“대선 필승카드는 없고, 정책은 급진적”…美민주당 고민

입력 2019-11-17 07:06 수정 2019-11-17 07:13
후보는 난립하는데, 트럼프 이길 보증수표 없어
힐러리 클린턴·미셸 오바마의 출마설도 끊이질 않아
오바마 전 대통령, “급진적 정책으론 부동층·중도층 표 못 얻어”


내년 11월 3일에 실시될 미국 대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새로운 주자들이 대선 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후보들은 난립하는데, 숙적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확실히 꺾을 필승카드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장 큰 걱정이다.

장외에선 아직도 자천타천으로 출마설이 끊이질 않는 인사들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안타깝게 패배했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다. 가장 파괴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미셸은 “대선 출마 가능성은 0%”라는 입장에서 변함이 없다.

버락 오바마(오른쪽) 전 미국 대통령과 그의 부인 미셸 오바마. AP뉴시스

민주당 일부 대선 후보들의 급진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부동층이나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이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참다못했는지 오바마 전 대통령이 친정인 민주당의 급진적인 흐름에 공개적으로 일침을 가했다.

뜨지 않는 바이든, 급진적인 워런·샌더스

민주당 초반 레이스는 ‘2강 1중’으로 전개됐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이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이들을 바짝 뒤쫓는 상황이다.
민주당 대선 후보 TV토론 모습. 왼쪽부터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조 바이든 전 부통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AP뉴시스

하지만 이 ‘2강 1중’ 후보들이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면서 사단이 발생했다. 이들을 가지고선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회의론이 확산된 것이다.

절대 강자로 평가 받았던 바이든 전 대통령의 부진은 이 모든 혼돈의 출발점이다. 바이든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선거자금이 900만 달러(약 105억원)가 조금 안되는데, 이는 다른 경쟁자들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금액이다. 비어있는 곳간이 바이든이 직면한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에도 연루돼 있다. 부통령이었던 2015년 말, 우크라이나 정부에 자신의 아들이 이사로 있던 회사에 대한 수사를 진행했던 우크라아나 검찰총장을 해임하라는 압력을 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이 TV토론에서 부진했던 것도 지지자들을 실망시킨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이 틈새를 이용해 치고 나온 것이 워런 상원의원이었다. 그러나 핵심 공약인 증세 없는 전국민 의료보험, 부유세 등이 워런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너무 급진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다.

특히 전국민 의료보험 공약은 워런의 결정적 자충수라는 평가다. 전국민 의료보험을 위해선 향후 10년 동안 20조 5000억 달러(약 2경 4000조원)가 드는데, 워런은 이 어마어마한 재원을 국방비 감축과 대기업·슈퍼부자의 세금으로 마련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자신에 대한 반감에 불을 질렀다.

스스로를 ‘민주적 사회주의자’로 부르면서 ‘정치 혁명’을 외치는 샌더스 의원에 대해서도 좌파적이고 급진적이라는 비난이 따라붙는다. 여기에다 샌더스는 가슴 통증으로 선거운동을 중단하는 등 건강 논란에도 시달리는 상황이다.

후보들은 난립하는데, 필승 카드가 없다

억만장자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뒤늦게 민주당 경선에 뛰어든 데 이어 더발 패트릭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도 지난 14일(현지시간)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14일 민주당 경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더발 페트릭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AP뉴시스

패트릭 전 주지사는 가정을 내팽개친 아버지로 인해 어머니와 힘든 유년시절을 보냈으면서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하고 인권변호사를 지낸 라이프 스토리가 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선거로 선출된 두 번째 흑인 주지사라는 기록도 갖고 있다.

NYT는 “블룸버그와 패트릭의 경선 참여로 마음을 돌린 것은 바이든의 부진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바이든 대세론이 흔들리면서 대선 출마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블룸버그와 패트릭 모두 중도 후보를 자처하고 있다. 워런과 샌더스의 급진적인 정책에 우려를 갖고 있는 민주당 내부의 중도·보수층을 공략하겠다는 의도다. 바이든이 독점하고 있던 민주당 온건파를 빼앗겠다는 계산인 것이다. 그러나 블룸버그와 패트릭이 민주당 경선에서 얼마나 파괴력을 보여줄지는 의문이다.

NYT는 “민주당 지지자들은 지금까지 나온 후보들의 경쟁력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다”면서 “이들은 ‘새로운 사람이 없냐’고 묻고 있다”고 현재 민주당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인물은 클린턴 전 장관이다. 클린턴은 영국 B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대선 불출마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겠다”면서 “매우 많은 사람들로부터 엄청난 출마 압박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NYT는 “클린턴은 대선 출마와 관련해 구체적인 행보를 하지 않고 있다”면서 “클린턴은 바이든의 상황을 보고 출마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클린턴이 출마를 하더라도 폭발력은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히든카드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이다. 보스턴 헤럴드와 프랭클린 피어스대학이 지난 10월 9∼13일 뉴햄프셔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대선 출마 선언도 하지 않은 미셸이 26%의 지지를 얻으며 깜짝 1등을 차지했다. 바이든과 워런이 각각 20%를 기록했고, 샌더스는 15%를 얻었다. 미국에서 경선이 두 번째로 빨리 열리는 뉴햄프셔주는 대선 풍향계로 알려진 주다. 하지만 미셸이 민주당 지지자들의 후보 차출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다.

2004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조지 W 부시 당시 후보에게 패했던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의 출마설도 나온다. 민주당 경선에서 돌풍 기미를 보이는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의 약진 가능성도 지켜볼 대목이다.

오바마의 충고, “민주당 급진적으로 가선 안 돼”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지나치게 좌파적인 정책으로 방향을 잡아선 안 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16일 보도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5일 워싱턴에서 열린 민주당 후원자들의 모임인 ‘민주주의 동맹’ 만찬에 참석해 이례적으로 민주당의 급진적인 기류에 제동을 걸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민정책과 의료보험에 대한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입장은 일반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평범한 미국인들은 기존 시스템을 해체하거나 개조하기를 원치 않는다”면서 “급진적인 정책으로는 부동층과 중도 성향의 유권자들의 표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AP통신은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특정 후보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았으나 워런과 바이든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그동안 민주당 경선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온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민주당에 충고를 던진 것은 급진적 기류를 막지 못해선 내년 대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는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민주당을 대표하지 못하면서, 목소리만 크고 공격적인 일부 소셜미디어 때문에 입장을 내놓아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고 설명했다. 급진적 주장들을 확산시키는 소셜미디어의 폐해를 지적한 것이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