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연구실은 일회용 플라스틱 폐기물이 대량으로 나오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곳입니다. 특히 생물의학 분야에서 엄청난 1회용 플라스틱을 사용합니다. 플라스틱 페트리접시,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병들, 여러 종류의 장갑, 무더기 샘플 튜브 등…. 모두 과학 연구의 일상입니다. 이것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의존하는 지식과 기술, 제품, 약품도 없었을지 모릅니다. 우리에게 필수적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환경오염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영국 가디언은 지난 10일 이 문제와 관련해 ‘웰컴 인스티튜트’가 모자이크사이언스(mosaicscience.com)에 올린 글을 가공한 기사에서 플라스틱 중독 탈출을 시도하는 여러 대학들의 사례를 전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 세대가 온다
잉글랜드 남서부에 위치한 엑세터대학의 연구원들은 생물학부의 연간 플라스틱 폐기물을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생물의학 및 농업 연구실에서만 연간 550만톤의 플라스틱 폐기물이 나올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2012년 전 세계에서 재활용된 플라스틱 83%에 해당하는 양입니다.
현대과학은 “플라스틱은 일회용”이라는 생각 위에 성장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습니다. 당장 이번 가을부터는 ‘그레타 툰베리’ 세대들이 대학교 학부생활을 시작합니다. 이들은 ‘기후를 위한 등교거부’ 운동을 경험한 세대입니다. 이들은 과학 연구가 어떻게 수행되는지 신선하거나 혹은 도전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동시에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는 현재 박사학위를 밟기 시작했고, 밀레니얼세대(80년대 초반부터 출생)는 점차 많은 연구소를 이끌어갑니다.
많은 대학들이 구내식당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근절하고 무탄소로 가기 위한 시도를 하면서, 연구실에서 나오는 쓰레기도 점점 더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학교들이 플라스틱 근절에 나서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리즈대학교는 2023년까지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근절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최근에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이 2024년을 목표로 그 뒤를 따를 것이라 발표했습니다. 새로운 정책은 일회용 커피잔을 캠퍼스에서 추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 연구실의 장비도 포함합니다.
리즈대의 지속가능성 프로젝트 책임자 루시 스튜어트는 연구원들 간의 반응은 엇갈렸지만 점차 발전해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영감을 주기 위한 대학으로서 이곳에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대학은 매일 획기적인 혁신을 일으키고 있는 연구기반 기관”이라며 “우리는 해결책이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해결책 만들어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험실 내의 플라스틱이 고질적인 문제인 점은 생물학적 물질이나 화학물에 의해 오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활용 재활용쓰레기와 함께 폐기할 순 없습니다. 일반적으로 실험실에서 나온 플라스틱 폐기물은 멸균 처리기에서 집중적으로 소독한 뒤 포장 처리되고, 매립지로 보내집니다.
하지만 요크대 생물의학 연구원 데이비드 쿤틴은 모든 플라스틱 쓰레기가 재활용하기에 너무 오염된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와 동료들은 이를 실험실의 플라스틱 재활용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이들은 고준위소독제에 24시간 담그는 ‘정화소’(decontamination station)를 개발했고, 이어 화학 제염용 린스를 개발했습니다. 또 재활용이 더 쉬운 플라스틱을 고르기 위해 그들이 사용하는 플라스틱을 살펴봤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전에 매립지로 보내던 플라스틱은 연간 약 1톤 줄었습니다. 쿤틴은 어떻게 소수의 연구자들이 그렇게 많은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는지 믿지 못하겠다는 듯 “20명이에요. 20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멸균처리 해야 할 상당량의 장비를 줄여 에너지와 물도 절약했습니다.
쿤틴은 “과학자로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양심이 있다면 1톤짜리 플라스틱만 쓰고 있을 순 없다”고 말했습니다.
◇“집에서도 재활용을 하지만 실험실에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
브리스톨대의 조지나 모티머와 사라나 치퍼 키팅이라는 두 명의 기술자도 실험실 폐기물을 분류하고 재활용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재활용이 어려운 제품들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재활용회사를 통해 장갑과 아이스팩 등 연구실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제품을 3회 재사용했습니다. 또 포장 폐기물을 줄이기 위해 가능하면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은 그들이 지속 가능한 실험실을 만들기 위한 퍼즐의 일부일 뿐입니다. 과학실에는 20년 이상 된 수천개의 샘플들이 보관된 초저온 냉동기가 많이 있습니다. 냉동기는 영하 80℃로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브리스톨대의 지속가능과학 매니저 안나 루이스는 이들에게 콜로라도 볼더 대학의 몇몇 연구를 보여주며 영하 70℃로도 대부분의 샘플들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고, 에너지를 3분의 1이나 줄일 수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마틴 팔리는 2013년 에든버러대의 영국 최초의 실험실 지속가능성 담당관이 됐습니다. 그는 처음에 플라스틱 문제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지만 이밖에도 다양한 문제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연구소가 석유 및 가스 산업처럼 ‘거대기업’은 아닐지라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며 이는 종종 간과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팔리는 연구집약적인 대학에서는 실험실이 대학의 에너지 사용의 약 3분의 2를 차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대학이 에너지 사용을 줄이려고 한다면, 연구 과학은 시작하기에 좋은 곳이라는 것입니다.
팔리는 “우리는 집에서는 재활용을 하지만 실험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대략 연구영역에 따라 연구실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가정에서보다 100~125배 더 크다”라고 지적했습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