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추천 영상에 소개돼 예기치 못하게 조회수가 오르는 이른바 ‘떡상’ 콘텐츠가 트렌드를 이끄는 일이 최근 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육상, 수구, 기계체조 등 비인기 스포츠다.
경기 영상이 소개되면서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늘자 선수들의 매력에 환호하는 댓글도 줄을 이었다. 200만 뷰를 기록한 씨름 경기 영상의 황찬섭 선수, 150만 뷰를 기록한 수구 경기 영상의 이성규 선수 등이 대표적인 스타다. 이를 보고 KBS가 씨름을 소재로 한 예능 ‘씨름의 희열’을 제작할 정도로 유튜브 알고리즘이 만든 트렌드는 레거시 미디어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튜브에는 2017년부터 이런 비인기 스포츠를 꾸준히 다뤄온 채널이 있다. 유튜브 애용자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스포티스트(SPORTIST)’다. 강석원(34) 대표를 포함한 4명이 육상, 수영, 역도 등 스포츠 경기 관련 콘텐츠를 제작한다. 가장 조회수가 높은 건 ‘국내 여자 대학부 육상 높이뛰기’ 영상으로 지난 12일 기준 388만 뷰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다수의 영상이 조회수 100만 뷰를 넘어섰다.
지난 8일 국민일보와 만난 강 대표는 “선수들은 본인의 경기를 영상으로 남겨놓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그걸 많은 사람들이 보고 응원해주면 엄청나게 힘이 난다고 했다”며 “영상을 본 후 경기장에 직접 찾아오고 응원하는 팬들도 늘었다고 한다”고 말했다.
‘이성규씨, 운동 그만두면 내가 먹여 살릴게’
스포티스트의 영상에 소개된 선수 중에는 사실 잘생긴 외모로 화제가 된 경우가 많다. ‘운동 그만두면 내가 먹여 살릴게’ 같은 이른바 ‘주접 댓글’도 적잖게 달린다. 강 대표는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운동을 잘하는 선수들을 실제로 만나보면 후광이 보인다는 느낌이 들어요. 잘생기고 예쁘기만 한 선수들은 찾아보면 굉장히 많지만 일단 운동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인기를 얻기 어렵죠. 출중한 선수들의 좋은 체격에 자신감 넘치는 눈빛 등을 보고 많은 분들이 매력에 빠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강 대표가 가장 아끼는 콘텐츠는 ‘2018년도 전국체전 여자 역도 64kg급’ 영상이다. 10대와 여성 시청자들을 많이 유입시키고 싶어서 자막 디자인도 신경 써서 만들었다. “스포츠에 관심이 없고 문외한인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걸 채널의 운영방침으로 삼았는데 그 영상이 바람직한 예시가 됐죠.” 조회수 100만이 넘은 이영상의 주 시청 연령대는 10~20대였고 여성 시청률이 40% 정도 나왔다. 구독·시청자 대부분이 남성인 상황에서 강 대표는 ‘여성 타겟팅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을 했다.
스포티스트 채널의 시청·구독자는 20~30대가 대부분이지만 이례적으로 전국소년체전 영상은 40~50대의 조회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강 대표는 “학부모들이 본인의 자녀가 경기하는 모습을 지인들에게 자랑하고 공유해서 학부모 연령대의 조회수가 높아진 것 같다”고 추측했다.
비인기 스포츠의 매력의 목표
강 대표는 스스로가 비인기 종목의 선수와 지도자로 활동하며 겪은 회의감 때문에 이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초등학생 때부터 수영선수로, 은퇴한 이후에는 10년 가까이 지도자로 지내며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에 비해 느끼는 보람이나 성취감은 약했어요. 좋은 성적을 낸다고 대중의 관심이 따라오지 않았습니다.”
강 대표는 운동을 잘하는 선수가 대중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문화가 마련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육상, 수영, 역도 등 엘리트 스포츠가 ‘비인기 종목’으로 불리게 된 이유가 성적만 중시하고 마케팅에는 소홀한 풍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야구, 축구 등 프로 스포츠는 수익성을 중시하고 관중을 늘려야 하기 때문에 협회와 업체에서 마케팅에 관련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반면에 육상, 수영, 역도, 체조 등은 선수들 간에 순위를 가리기 위해 대회가 열릴 뿐 관중이 보고 즐길 수 있도록 친절하게 구성하지 않아요.”
때문에 스포츠 중계도 많이 줄었고 선수 발굴 및 육성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선수 부족으로 운동부가 해체되기도 한다.
“일전에 태백 철암고 역도부 학생들을 다룬 적이 있어요. 전국대회 남성부, 여성부 1등을 한 학생들이 있고 코치는 최우수지도상을 받은 훌륭한 팀이었죠. 그런데 올해 철암고 역도부가 선수 부족으로 해체된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안타깝죠. 운동선수를 지망하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장래가 불투명하다며 부모님들도 선호하지 않아요. 아이들이 꿈을 갖고 도전하고 싶게끔 스포츠가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강 대표의 제자였던 수영선수들이 나오는 예능 형식의 콘텐츠를 제작했지만 이후 다양한 경기 영상들을 제작하는 것으로 노선을 정했다. 예를 들어 역도의 경우 비교적 날씬한 저체급 여자선수들을 다룬 전략이 통했다. ‘역도선수는 다 체격이 큰 줄 알았다’ ‘신선하다’ 등 긍정적인 댓글이 달렸다.
스포티스트의 콘텐츠 제작은 12개 정도 종목의 협회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유망한 선수를 사전 조사하고 어떤 경기를 다룰지 결정해 제작한다. 경기 일정이 겹치면 조회수가 높은 종목들을 위주로 정한다. 편당 평균조회수가 높은 건 육상, 기계체조, 수영 순이다.
각 영상의 조회수가 점차 늘면서 올해 3월 이후 채널이 빠르게 성장했다. 이때부터 콘텐츠 업로드 양을 주 1회에서 주 3회 정도로 늘렸다. 구독자도 급격히 늘어 지금은 11만 명이 됐다.
채널이 인기를 얻는 만큼 예기치 못한 부작용도 생겼다. 요즘 강 대표의 고민은 성희롱 댓글 관리다. 청소년 선수가 나오는 영상은 유튜브가 아동 보호 차원에서 댓글 기능을 자동으로 막는다. 하지만 성인의 경우 남녀 선수 관계없이 영상에 성희롱 댓글이 달린다. 조회수가 높을수록 그 양은 더 많다. 강 대표는 “필터 기능을 최대한 많이 걸어놓고 항상 지우고 있지만 성희롱 댓글이 하루에 500개 이상 달린다”며 “선수들이 보고 상처를 받을까 염려스러운 부분이 있으니 부디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강 대표와 스포티스트 팀원들은 선수들의 일상을 풀어내는 ‘웹 예능’ 콘텐츠 제작도 계획하고 있다. 스포츠 매니지먼트 사업으로까지 확장도 꿈꾸고 있다. 선수들을 콘텐츠화하고 대중적으로 스포츠가 다시 화제를 부르는 분위기를 만드는 게 목표다. “우리나라에서는 국제대회에서 1등을 해야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강한데 국내에서 입상하고 멋진 경기를 하는 것도 대단하다는 메시지도 전하고 싶어요.” 강 대표는 해외 시청자 공략도 가능하다고 봤다. “스포츠를 볼 때는 사실 언어가 필요 없어요. 표정만 봐도 선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다 드러나니까. 요즘 유튜브 영상들은 섬네일도 자극적인 자막을 넣는 식으로 많이 만드는데 저희는 심플하게 만들어요.”
‘알만사(알고리즘으로 만난 사람들)’=유튜브를 이용하다 보면 때때로 내가 구독한 적도, 관심 가져본 적도 없는 주제의 영상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추천 영상 목록에 뜨고는 합니다. 필터버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유튜브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은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을 더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의외의 발견을 가능하게도 합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유튜브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발견됐고, 우리가 알고 있던 세상에 다양성을 더하는 채널을 소개하는 비정기 연재물입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