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루트 철벽’ 못 뚫은 벤투호 크로스… 월드컵 2차 예선 쩔쩔

입력 2019-11-15 00:11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14일 레바논 베이루트 카밀 샤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4차전 원정경기에서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연합뉴스

벤투호가 ‘베이루트 철벽’을 뚫지 못했다.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은 레바논의 밀집 수비를 뚫을 비책으로 예리한 크로스를 준비했지만, 정작 실전에서 무기가 되지 못했다. 한국이 2022 카타르월드컵 본선을 향한 첫 걸음인 아시아 2차 예선에서 50%의 낮은 승률로 반환점을 통과했다.

한국은 14일 레바논 베이루트 카밀 샤문 스타디움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4차전 원정경기에서 0대 0으로 비겼다. 이로써 한국은 모두 8경기 중 4경기를 소화한 지금까지 2승 2무(승점 8)를 기록했다. 선두를 지켰지만, 최종 예선보다 수월한 2차 예선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지 못하고 있다.

이 경기는 반정부 시위로 정국이 불안한 레바논 측의 요청에 따라 무관중으로 이뤄졌다. 이 경기장의 4만8000여 관중석은 일부 초청자를 제외하고 모두 비워졌다. 한국은 지난달 15일 ‘깜깜이 평양전’에 이어 월드컵 예선 2경기를 연속 무관중 경기로 치르는 이례적 사례를 남겼다.

관중의 야유에 휩싸이는 원정경기의 부담감을 덜어냈지만, 한국은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침투패스는 번번이 레바논의 밀집 수비에 가로막혔고, 중원에서 빈곳으로 넘어간 패스는 몇 걸음을 더 뛰어야 받을 수 있을 만큼 부정확했다.

이 틈에 레바논은 유럽 선수에 맞먹는 몸집을 앞세워 한국을 압박했다. 빠른 속도의 역습과 중거리슛으로 한국의 골문을 위협했다. 레바논 공격수 레비흐 아타야가 전반 8분 한국 페널티박스 외곽에서 때린 중거리슛은 우리 골키퍼 김승규가 몸을 날려 막아야 할 만큼 위협적이었다.

답답한 흐름이 계속되자 손흥민이 나섰다. 동료에게 공격 기회만 열어주던 전반 33분, 상대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중앙으로 파고든 뒤 슛을 때렸다. 이 슛은 상대 수비수의 몸을 맞고 굴절돼 골문을 벗어낫다. 황의조는 1분 뒤 수비수 1명을 등지고 상대 골키퍼 메흐디 칼릴과 마주한 상황에서 넘어지며 왼발 슛을 때렸지만 빗나갔다. 한국의 무기력한 공격 전개는 ‘주포’의 슛마저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한국 축구대표팀 주장 손흥민이 14일 레바논 베이루트 카밀 샤문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4차전 원정경기에서 드리블 돌파 중 상대 골키퍼 메흐디 칼릴에게 가로막히고 있다. 연합뉴스

벤투 감독은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미드필더 황인범을 공격수 황희찬으로, 후반 19분 미드필더 남태희를 신장 196㎝ 장신 공격수 김신욱으로 각각 교체했다. 무려 5명의 공격수를 투입해 극단적인 전술을 펼쳤다. 하지만 부정확한 크로스는 이들에게 닿지 않았다. 황의조가 후반 21분 상대 페널티박스 왼쪽 외곽에서 올라온 손흥민의 프리킥을 헤딩슛으로 연결했지만 골대를 때리는 불운도 겪었다.

마지막 교체 카드로 후반 34분에 오른쪽 공격수 이재성과 교체 투입된 이강인도 베이루트 철벽을 뚫어내지 못했다. 후반 추가시간은 6분이나 주어졌지만, 레바논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국은 레바논과 통산 전적에서 13전 9승 3무 1패의 압도적 우위를 유지했지만, 베이루트 원정 전적에서 1승 3무 1패의 균형을 깨지 못했다.

한국의 예상 밖 부진은 H조 판세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앞서 같은 조 2위였던 북한은 투르크메니스탄 원정에서 1대 3으로 졌다. 레바논과 나란히 2승 1무 1패(승점 7)를 기록했지만 골득실 차에서 2골 차이로 밀려 3위로 내려갔다. 레바논은 2위로 도약했다. 레바논과 북한은 모두 한국을 승점 1점 차이로 뒤쫓고 있다. 4위 투르크메니스탄(승점 6)과 한국의 승점 간격은 2점이다. 한 경기 결과에 따라 뒤집힐 수 있는 승점 차이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