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한국에 사는 조카가 너무 보고 싶어 30년만에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왔습니다”
지난 12일 김해공항에서 몇 시간째 서성거리던 백발의 할머니가 조심스레 꺼내놓은 말이었다. 할머니의 모습을 본 누군가가 오후 8시10분쯤 부산 김해공항 공항파출소로 실종 의심 신고를 해왔다. 현장에 출동한 백지은 경장은 국제선 게이트 앞에서 고령의 할머니를 발견했다.
한눈에 봐도 연세가 지긋해보이던 할머니는 일본에서 출발해 부산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백 경장은 할머니에게 한국을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지만, 할머니는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했다. 일본에서 오래 살아 한국말에 서툰 탓이었다.
백 경장은 곧바로 공항에 도움을 요청해 통역요원을 불렀다. 통역요원이 오자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고 “갑자기 한국에 사는 조카가 너무 보고 싶어 30년 만에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왔는데 조카를 어떻게 찾아야 할지 몰라 공항에서 서성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할머니는 올해 97세가 됐다고도 했다.
할머니가 조카를 찾을 수 있도록 도와드려야겠다고 생각한 백 경장은 할머니의 소지품에서 편지 한 통을 발견했다. 먼저 간 할머니의 친오빠와 할머니가 수십년 전에 주고받은 편지였다. 편지에는 울산의 한 주소가 적혀 있었다.
백 경장은 이 주소를 토대로 울산경찰청에 공조 요청을 했고, 해당 주소지의 이장을 통해 부산에 사는 할머니 친조카를 찾아냈다.
할머니는 파출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조카를 기다렸다. 다음날 오전 8시, 경찰의 연락을 받은 조카는 한걸음에 부산 김해공항까지 달려왔다. 그는 반가운 마음에 할머니를 번쩍 등에 업었다.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고국행으로 성사된 예기치 못한 만남은 두 사람에게 행복을 안겨줬다.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본 경찰은 “할머니는 파출소에서 밤을 지새웠지만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