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정 위원장 “런던 자랑거리 된 영화제, 더 성장시키고 싶어요”

입력 2019-11-14 17:31 수정 2019-11-14 18:01
런던 문화의 심장부인 레스터 스퀘어에서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는 “브렉시트 논의가 일면서 아시아에 대한 영국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내가 제일 재밌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영화제인 것 같다. 다양한 기획을 통해 한국영화와 문화를 꾸준히 알려 나가고 싶다”고 했다. 윤성호 기자


지난 9월 영국 런던의 상징인 템스강 유람선에서 한국 영화 한 편이 상영됐다. 작품은 봉준호 감독의 ‘괴물’. 컵라면에 소주를 걸친 런던시민 등 200명은 영화 속 괴물이 한강 밖으로 튀어 오르고 강이 일렁일 때마다 낮게 소리를 질렀다.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 수입사 관계자와 세계적 권위의 영화전문지 사이트 앤드 사운드 부편집장도 이 행사를 보기 위해 배에 올랐다.

한국영화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톡톡 튀는 상영회로 화제 몰이를 한 주인공은 전혜정(51)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영화의 광장’ 레스터 스퀘어에서 5년째 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그는 남다른 기획력으로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려온 유명인사다. 박찬욱 감독 등 숱한 유명 영화인들이 그의 절친한 지인이다. 최근 강릉영화제 참석차 한국을 찾아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난 전 위원장은 “엄청난 문화적 인프라를 갖춘 영국은 우리 문화를 전하는 데 안성맞춤인 곳”이라며 “올해 영화제도 한국작품 대부분이 매진되며 흥행했다”고 전했다.

영국 최대 규모인 오데온 레스터 스퀘어 극장(800석) 등에서 지난 3일까지 11일간 열린 이번 제4회 영화제에서는 아시아 11개국의 영화 60편이 상영됐다. 약 1만명의 인파가 이 영화제를 다녀갔는데, 배우 류준열 정해인, 홍콩 배우 곽부성 등 아시아 스타와 감독들에게 뜨거운 관심이 쏠렸다. 전 위원장은 “넷플릭스로 드라마 ‘봄밤’(MBC)을 본 정해인씨의 해외 팬까지 많은 이들이 현장을 찾았다”며 “영화제가 떠오르는 배우와 감독들의 발판으로 여겨진다는 점이 기쁘다”고 했다.


런던 문화의 심장부인 레스터 스퀘어에서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는 “브렉시트 논의가 일면서 아시아에 대한 영국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내가 제일 재밌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영화제인 것 같다. 다양한 기획을 통해 한국영화와 문화를 꾸준히 알려 나가고 싶다”고 했다. 윤성호 기자


민간 행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영화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2015년 프롤로그 격 행사였던 0회를 시작으로 5년도 안 돼 런던이 “시의 주요행사”라고 치켜세우는 축제가 됐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정부 기관 영국영화협회(BFI)에서 에든버러국제영화제 등 유수의 영화제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지원금을 받고 있고, 올해는 서울관광재단에서도 후원을 받았다. 아시아영화제로는 세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만큼 규모도 크다.

이 같은 성장에는 전 위원장의 노력이 짙게 배어있었다. 2006년 런던 한국문화원이 문을 열 때 출범멤버였던 그는 10여년간 일한 퇴직금을 이 행사에 쏟아부었다. 문화원 재직 당시 K뮤직페스티벌 등 숱한 문화전파모델을 성공시킨 노하우를 자유롭게 펼쳐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전 위원장은 “한국 영화를 아시아 속에 위치시키면서 위상을 더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봤다”고 했다.


런던 문화의 심장부인 레스터 스퀘어에서 ‘런던아시아영화제’를 이끌고 있는 전혜정 런던아시아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는 “브렉시트 논의가 일면서 아시아에 대한 영국의 관심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내가 제일 재밌고, 잘할 수 있는 일이 영화제인 것 같다. 다양한 기획을 통해 한국영화와 문화를 꾸준히 알려 나가고 싶다”고 했다. 윤성호 기자


사비로 출장을 갈 정도로 빠듯할 때도 많지만, 영화제를 찾은 아시아 스타들과 감독들에게만큼은 최상의 컨디션을 제공하려 늘 발품을 판다. 전 위원장은 “바쁘게 돌아다닌 결과 이번 레드카펫 차량으로 롤스로이스를 후원 받았었는데, 배우들이 굉장히 놀라더라”며 “작은 부분까지 신경 써 영화인들이 문화 전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기획자의 역할”이라고 했다.

그의 남다른 기획력도 흥행 요인에서 빼놓을 수 없다. 가령 올해 영화제에서는 ‘차세대 백남준’으로 불리는 이이남 작가의 미디어아트를 영국 대표 미술관인 테이트모던 내 극장에서 선보이며 박수를 받았다. 영화 이상으로 미술 등 전시문화를 즐기는 영국 시민들의 시선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전 위원장은 벌써 내년 영화제 준비에 들어갔다. 영화제 5곳을 먼저 돌아다닐 예정이다. 그런 그가 꿈꾸는 런던아시아영화제는 어떤 모습일까. ‘미래형 축제’로 정의할 수 있었다.

“전 타임스지 기자분이 우리 영화제를 ‘부티크 영화제’라고 하더라고요. 개성 있고 알차다는 뜻이죠. 이젠 그걸 넘어 다양한 인종과 문화, 예술이 녹아들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 싶어요. 이를테면 ‘페스티벌 3.0’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웃음).”

강경루 기자 r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