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집단발병’ 장점마을, 18년만에 원인 확인됐지만 배상은 먼 길

입력 2019-11-14 16:53

전북 익산의 장점마을. 인심좋고 청정한 마을이던 이곳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 것은 2001년 뒤편 야산에 비료공장인 ‘금강농산’이 들어선 뒤부터였다.

공장이 가동되자 악취가 마을을 뒤덮고 인근 저수지는 새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런 사이 마을 주민들은 암에 한두명씩 쓰러져 갔다. 주민들은 모두 비료공장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고 익산시와 전북도 등에 민원을 넣었지만 그 때마다 ‘문제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2010년 9월엔 공장 측이 몰래 버린 폐수로 저수지의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하지만 그해 말 공장은 전북도청에서 우수환경상을 받았다. 익산시와 전북도 보건환경연구원은 2013년 장점마을 대기·수질을 조사했지만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냈다.

익산시는 2015년 금강농산이 퇴비로만 사용해야 하는 연초박(담배찌꺼기)을 유기질 비료 원료로 썼다는 ‘폐기물 실적 보고’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 또 10여차례 이상 금강농산의 위반 사례를 확인했으나 가동 중단이나 폐업 등의 강력한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런 사이 마을 주민 99명 중 무려 22명이 암에 걸렸다. 이 중 14명이 세상을 떠났다. 결국 2016년 8월 주민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진상 규명과 대책을 세워달라고 거리로 나왔다.


환경부 소속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 6월 ‘장점마을 건강영향조사 주민설명회’를 통해 비료공장에서 1군 발암물질이 발생해 주변지역으로 확산됐고, 주민 집단 암 발병 원인으로 추정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부는 14일 익산 국가무형문화재 통합전수교육관에서 발표회를 하고 장점마을의 암 집단 발병이 비료공장 때문이라고 공식 확인했다. 정부가 환경오염으로 인한 비특이성 질환의 역학적 관련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처음이다. 공장이 가동된지 무려 18년 만의 일이다. 장정마을의 비극은 비료공장의 탐욕과 행정의 부실 관리가 빚은 인재(人災)인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정부 조사 결과 결과에 따르면 비료공장은 퇴비로만 사용해야 하는 연초박을 불법적으로 건조 공정에 사용했다. 이 공장은 KT&G에서 사들인 연초박을 유기질 비료로 만드는데 썼다. 연초박 건조 과정에서는 1군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와 담배특이니트로사민이 배출되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 공장은 방지시설을 거치지 않고 발암물질을 그대로 공기 중에 배출했다. 장점마을 남녀 전체 암 발병률은 간암, 피부암, 담낭 및 담도암, 위암, 유방암, 폐암 등에서 전국 표준인구 집단보다 최고 25배나 많았다.

하미나 환경부 환경보건정책관은 “익산시와 협의해 주민건강 모니터링, 환경개선 등 사후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차질 없이 추진되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피해에 대한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적으로 비료공장으로부터 보상을 받아야 하지만 이미 공장은 폐업했고, 사장도 폐암으로 사망한 상태다. ‘환경 오염피해 배상책임 및 구제법(피해구제법)’을 통해 정부로부터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그동안의 고통에는 새발의 피 수준이다. 치료비는 자기부담금 정도만 지원되고, 사망위로금은 3000만~4000만원가량에 불과하다.

주민들은 비료공장에 연초박을 제공한 KT&G에 집단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장점마을 주민대책위는 “주민들의 환경 참사는 KT&G 사업장폐기물인 연초박이 원인”이라며 “KT&G는 주민들의 집단 암 발병 사태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공식사과와 피해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환경부와 전북, 익산시에 주민들에 대한 피해구제, 건강관리, 오염원 제거 등 사후관리에 만전을 기할 것을 요구한다”며 앞으로 장점마을 같은 사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도 촉구했다.

KT&G는 “우리는 관련 법령을 준수해 연초박을 법령상 기준을 갖춘 폐기물 처리시설인 비료공장을 통해 적법하게 매각했다”고 공식 입장을 냈다.

모규엽 신준섭 기자, 전주=김용권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