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는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이다. 자신감이 없는 아이다. 성적을 잘 받음에도 노심초사하고 걱정이 많다. 발표할 때에도 너무 긴장하게 되고 미리 걱정이 많아서 때로는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하거나 포기 해버리기도 한다. B는 실제로는 매우 스마트한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친구들이 자신보다는 훨씬 능력이 많다고 느낀다. 앞에서 발표를 하면 친구들이 비웃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자기를 좋아 하지 않을 거라 느끼면서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질 못하였다.
B에게는 3살 위인 형이 있다. 형은 지나치게 경쟁적인 성격이다. 매사에 이기려만 하고 동생을 돌봐주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싸워서 이길 라이벌로 생각했다. B는 어릴 때부터 무엇을 해도 형을 이길 수가 없었다. 달리기를 해도 그렇고 씨름을 해도, 축구를 해도 그랬다. 한글을 읽는 것도,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에는 형을 이길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B는 자기는 무엇을 해도 남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B의 아빠는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매우 적극적인 성격으로 끊임없이 노력하여 경쟁에서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강한 사람이 되라’‘이기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암암리에 강요했다. 이긴 아이에게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기는 자만이 아빠의 인정을 받는다는 암시였다. 어릴 때 무엇을 해도 힘으로든 속도든 형을 이길 수 없었던 B는 열등감이 많은 아이로,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아이로 자라게 된 거다. 그리고 자신은 경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니 주눅이 들고 불안해졌던 거다.
엄마는 이런 아빠의 성격과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불만이었지만 남편을 변화시키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관찰을 해보니 엄마도 암암리에 B의 열등감에 기여하고 있었다. 두 아들을 키우기에 힘에 부쳤던 엄마는 집안을 정리할 때도 ‘누가 먼저 치우나 보자’ ‘빨리 치우는 사람에게 쿠키 한 개 더!’라는 식으로 경쟁을 부추겼다. ‘너도 형처럼 자신 있게 한번 도전 해봐’라는 말로 무의식 중에 B와 형을 비교하고 있었다.
부모는 두 아들에게 각각 역할을 부여하고 있었다. 큰 아이에게는 ‘우리 대장’ B에게는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장이라는 호칭은 큰 아이에게도 항상 이기고 잘해야 한다는 부담으로만 작용하였을 뿐, 동생을 끌어주고 보살피는 데는 소홀하도록 만들었다. B도 강아지라 불리우며 자기 역할을 한정하게 끔 만들어 부모에게 늘 귀엽고 순종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나이에 맞게 행동하고 성취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강아지처럼 사랑 받는 사람이 되려면 상대의 기분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자신을 싫어할까봐 자기 주장을 하기도 두려웠다.
가족 내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따라 아이들은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형성하고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 성격으로 만들어지면서, 장상적인 발달을 저해하기도 한다. 부모들이여! 돌아볼지어다! 나는 과연 가족 내에서 어떤 역할과 이미지로 자라났는가? 그리고 그것이 지금의 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나도 내 자녀에게 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는 않은 지를 말이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