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 대표팀이 14일(한국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2022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4차전을 치른다. 베이루트 원정은 대표팀에 항상 험난했다. 역대 1승 2무 1패를 기록했다. 2014 브라질월드컵 2차예선에선 1대 2로 패해 조광래 전 감독이 경질되는 ‘레바논 참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 힘들었던 원정길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골이 있다. 2013년 6월 5일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레바논전에서 위기에 빠진 대표팀을 구해냈던 버저비터 동점골이다. 0-1로 뒤지던 후반 종료 직전 환상적인 왼발 프리킥이 레바논 골망을 가르며 대표팀은 제 2의 레바논 참사를 피하게 된다. 우즈베키스탄에 골득실 차로 아슬아슬하게 본선행을 확정했기에 그 원정 승점 1점이 없었다면 대표팀은 브라질에 가지 못할 뻔 했다. 추억의 골을 넣은 주인공 김치우를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만났다.
김치우는 FC 서울에서 전성기를 보내며 K리그·대한축구협회(FA)컵 우승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을 차지한 선수다. 경기를 지배해 ‘치우천왕’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국가대표로서도 28경기에 나서 5골을 넣었고 그 중 3골은 왼발 프리킥으로 넣은 ‘왼발의 마술사’다. 지난 시즌을 앞두고 서울과의 계약이 만료된 후 K리그2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해 선수 생활 황혼기를 보내는 중이다.
김치우에게도 레바논전 골은 기억에 또렷이 남아 있다. 그는 “대표팀에서 넣은 5골이 모두 영광적인 순간”이라며 “그 날 킥 감각이 많이 좋아 프리킥 찬스에서 (손)흥민이에게 내가 차보겠다고 했고 운 좋게도 들어갔다. 간신히 무승부를 기록해 마냥 좋지만은 않았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는다”고 기억했다.
김치우도 베이루트 원정엔 혀를 내둘렀다. 그는 “중동 원정은 항상 힘들었는데 레바논은 당시 내전 중이라 훈련할 때 총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열광적인 팬들도 많았다. 게다가 선실점을 하고 선수들이 조급해져 더 골이 들어가지 않았다”고 상기했다. 현 대표팀엔 당시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 선제골을 넣어 경기를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거라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김치우는 그 골로 브라질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사실 2010 남아공월드컵 예선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2조 선두를 달리던 북한과의 경기 후반 42분 0-0 상황에서 극적 프리킥 결승골을 넣어 남아공행의 선봉장이 됐다. 하지만 유독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남아공 땐 부상을 입게 되면서, 브라질 땐 최강희 감독이 홍명보 감독으로 교체되면서 결국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김치우는 “선수 인생에서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축구선수로서 월드컵 나가고 못나가고 차이가 크다. 좀 더 노력하고 자기관리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다”며 “(차)두리 형도 ‘네가 애들 월드컵 두 번 보내줬다’고 농담을 많이 한다”고 아쉬워했다.
인터뷰 전날 생일이 지난 김치우는 벌써 만 37세가 된 노장이다. 부산의 최고참으로서 김문환, 이동준 등 어린 선수들을 이끈다. 올 시즌 22경기 4도움을 올리는 여전한 킥 감각으로 팀의 플레이오프행에 일조했다.
김치우는 “선배로서 싫은 소리도 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리더십 있는 성격은 아니다”며 “(이)동준이나 (김)문환이 같은 선수들은 알아서도 잘 한다”고 말했다. 다만 “킥은 제가 자신 있는 부분이기에 20대 초반의 같은 포지션 선수들이 물어보면 크로스나 프리킥을 함께 차며 알려주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은 지난 시즌에도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올랐지만 김치우의 친정팀 서울을 만나 승격이 좌절됐다. 김치우는 1차전 종료 휘슬이 울린 뒤 김원식을 밀쳐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그는 “플레이 중 말다툼 후 오해가 생겨 경기 후 죄송하다고 하는 (김)원식이를 밀치는 안 좋은 행동을 했다”며 “감정이 앞서서 그런 행동이 나왔다. 반성을 많이 했다”고 돌아봤다.
감정이 앞섰던 건 상대가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김치우는 서울에 남다른 애정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목표도 서울에서 뛰는 거였다. 그는 “서울이란 팀이 그냥 좋았다. (김)치곤이, (김)진규, (정)조국이, (박)주영이, (이)청용이, (기)성용이, 데얀, 아디까지 좋은 선수가 많아 ‘저 팀에서 한 번 뛰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랬던 서울을 만나 부담도 됐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강했던 것 같다”고 밝혔다.
승격에 실패한 건 지난 시즌의 일이다. 부상에서 회복한 김치우는 부산의 다음 시즌 K리그1 진출을 위해 칼을 갈고 있다. 그는 “14일부터 남해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단판 승부라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선수들끼리 더 많은 얘기를 하고 발을 맞춰야 한다”며 “경기에 출전한다면 고참 선수로서 솔선수범해 후배들에 귀감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김치우는 이제 선수생활의 멋진 마무리를 꿈꾼다. 부산과의 계약은 올 시즌 만료되지만 1~2년 더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몸 관리에도 신경 쓰고 있다. 그는 “승격한 뒤 부산에 남아 K리그1에서 함께 뛴다면 너무 영광스럽고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며 “팀에 어리고 재능 있는 선수들이 많기에 1부에 가서 충분히 잘 할 거라 생각한다. 꼭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트레이드마크였던 장발 머리가 단정하게 정리된 것처럼, 까칠하고 무뚝뚝했던 김치우의 발언 속에선 이제 아버지로서의 책임감에 축구에 대한 속 깊은 애정까지 묻어 나왔다.
“‘김치우’는 아쉬움이 많이 남은 선수였어요. 선수 생활 마무리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한 경기 한 경기가, 축구가 더 소중해요. 3살 아들이 축구 중계를 보고 ‘아빠’라고 말하기 시작했고 와이프도 운동 잘 할 수 있게 많이 도와줘 책임감이 들어요. 끝까지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