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한 퓨처스랩 베트남으로 현지 스타트업 육성 도와
2017년부터 베트남 정부와 스타트업 육성 협업
외국계 1위 은행 넘어 현지 ‘리딩뱅크’로
지난 7월 베트남 하노이 인문사학과학대의 한 강의실. 여느 때처럼 해외취업 강연을 들으려던 연수생 100여명 앞에 예정된 강사가 아닌 한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자신을 ‘엉클(uncle) 조’라고 소개한 그는 태연하게 강연을 시작했다. 엉클 조가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임을 한두 명씩 알아보기 시작했고, 이내 강의실은 술렁였다.
조 회장은 이날 신한금융지주가 베트남에서 추진하고 있는 ‘청년 해외취업 지원사업’에 1일 멘토로 깜짝 등판했다. 강사로 나서겠다고 스스로 제안을 했다고 한다. 조 회장은 학생들에게 “베트남은 큰 꿈을 가질 수 있는 ‘기회의 땅’이다. 그 기회를 절대 놓치지 말라”고 당부했다.
사실 조 회장에게 베트남은 각별한 나라다. 신한은행 글로벌사업그룹 전무로 일하던 2009년의 일이다. 외딴 섬처럼 따로 영업하고 있는 베트남 신한비나은행과 신한베트남은행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는 실무진에게 “둘을 합병해서 좋은 시너지를 내보자”고 제안했다. 실무진은 사업성에 의문을 품었다. 금융 인프라가 낙후해 미래 성장 가능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조 회장은 3박4일 마라톤 회의를 열고 실무진들을 설득했다. 합쳐서 연간 순이익 288억원에 불과하던 두 은행은 2011년 11월 한몸이 됐다. 그러자 보이지 않던 가능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판을 ‘신한베트남은행’으로 바꾼 지 10년도 되지 않아 순이익 1000억원을 기록하는 ‘외국계 1위 은행’으로 성장했다.
반전의 비밀은 엉클 조의 ‘상생금융’에 있다. 조 회장은 상생을 차별화의 출발선으로 삼았다. 베트남을 ‘장사할 땅’이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땅’으로 봤다. 무작정 영업 기반을 넓히기보다는 선진 금융기술을 전수해줘야 한다고 판단했다. 잠재적 고객인 현지 기업과 현지인들이 성장해야 은행도 클 수 있어서다.
‘신한 퓨처스랩 베트남’은 그렇게 탄생했다. 퓨처스랩은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베트남 기업에 멘토링을 제공한다. 직접 투자나 투자 주선도 책임지는 ‘원스톱’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다. 3년 간 거쳐 간 스타트업만 21곳에 이른다.
신뢰의 싹은 깊게 뿌리 내렸다. 신한 퓨처스랩 베트남사무국의 김선일 팀장은 14일 “퓨처스랩 2기에 참가한 ‘업업 앱’은 인사관리프로그램을 판매하는 기업인데, 처음에는 게임 요소가 들어간 성과지표 프로그램을 개발했었다. 하지만 멘토링에서 보수적인 기업집단을 감안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고 과감히 게임 요소를 제거하고 새로운 성과지표 프로그램을 판매하고 있다. 이 정도로 신뢰가 쌓여 있다”고 소개했다.
퓨처스랩은 베트남 정부마저 매료시켰다. 2017년 베트남 정부는 신한 퓨처스랩에 손을 내밀었다. 국영 스타트업 육성 기관인 ‘사이공 이노베이션 허브’와 협업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두 프로그램은 각자 육성 중인 스타트업을 소개해주고, 투자까지 제안하면서 상호 영업망을 확대했다. 지난해 한국-베트남 핀테크 산업 교류 프로그램인 ‘런웨이투더월드’에 신한 퓨처스랩이 한국 최초로 참여하기도 했다.
신한 퓨처스랩의 인기는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의 박항서 감독 못지 않다. 베트남 국영방송 VTV는 지난 1월 2일 저녁 메인뉴스에서 “신한은행이 스타트업 성장 생태계를 조성에 기여하고 있으며, 양국 교류 프로그램에 큰 의미가 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지난 30일 신한 퓨처스랩 행사장에 참석한 한 베트남 정부 관계자는 “퓨처스랩은 베트남 정부가 추진하는 스타트업 육성 방향과 일치하는 최적화된 모델”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체 리딩뱅크’라는 조 회장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다.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베트남에서 계속 영향력 있는 은행으로 거듭나기 위해 현지 기업들과 더 많은 관계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웅 기자 wo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