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평일에도 ‘전쟁터’…中 ‘테러리즘’ 경고

입력 2019-11-13 17:09
시위대를 체포하고 있는 홍콩 경찰.AFP연합뉴스

시위대와 경찰의 ‘강 대 강’ 대치가 격화되면서 홍콩의 혼란의 소용돌이로 빠져들고 있다. 주말에만 이뤄지던 시위는 주중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졌다.

시위대는 지하철역까지 들어가 차량을 파손하고 불을 질렀다. 교통대란으로 은행 점포 수백 곳이 문을 닫고 의료기관의 수술까지 차질을 빚는 등 도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경찰은 ‘교도소 폭동대응팀’까지 투입해 인력보강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홍콩 시위를 ‘테러리즘’으로 규정해 본토의 무력개입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시위대는 13일 오전부터 시위 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홍콩 과기대생 차우츠록씨를 추모하고 경찰의 총격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전날 밤부터 홍콩 곳곳의 철로 위에 돌이나 폐품 등을 던져 지하철 운행이 불가능하도록 하는 등 이틀째 ‘여명 행동’이란 대중교통 방해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밤사이 지하철역 내에도 들어가 유리창을 깨고 전동차를 파손하거나 불을 질렀다. 또 의자, 폐품 등을 차량 내에 던져 운행이 불가능하도록 해 홍콩 시내 곳곳의 지하철 운행이 중단 또는 지연됐다.

시위대는 이날 아침에도 지하철 차량과 승강장 사이에 다리를 걸치고 서서 차량 문이 닫히는 것을 방해해 동부구간 노선 운행이 중단됐다.

몽콕, 툰먼, 정관오, 위안랑 등 여러 지하철역이 폐쇄되면서 나머지 문을 연 지하철역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디딜 틈이 없었다. 곳곳의 지하철역 밖에도 미니버스나 택시 등을 타려는 시민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또 시위대가 곳곳에 바리케이트를 설치하는 바람에 타이포와 사틴 지역을 연결하는 도로가 폐쇄됐고, 홍콩섬과 카오룽 반도를 연결하는 5개 노선을 비롯해 70개 버스 노선이 중단됐다.

유치원 교사 카르멘 체(22) 씨는 “미니버스를 기다린 지 1시간 30분이나 됐다”며 “오늘 직장에 도착하려면 최소한 2시간 30분 정도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직장인 웡 씨는 “40분 동안 기다렸지만, 택시는 1대밖에 오지 않았다”며 발을 굴렀다.

이날 홍콩 내 대부분의 대학은 수업을 중단했고, 영국계 국제학교를 비롯해 많은 초·중·고등학교도 임시 휴교령을 내렸다. 교육당국은 목요일에도 유치원과 초·중학교, 특수학교 등의 수업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전날 학생들과 경찰의 충돌로 전쟁터를 연상게 했던 홍콩 중문대 교내에는 아침부터 학생들이 다시 집결해 경찰과 대치했다. 홍콩대, 침례대 등 주요 대학 주변에도 진압 경찰이 배치됐다. 중문대학에서는 전날 학생 70여명이 다쳐 치료를 받았다.

홍콩 의료당국은 이날 시위대의 교통방해로 의사, 간호사 등 출근이 지연되면서 예정된 수술을 비롯해 주요 병원 서비스가 차질을 빚었다. 또 교통대란을 이유로 주요 은행의 250개 점포가 이날 하루 문을 닫았다.
시위대의 방화로 홍콩의 한 쇼핑센터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길이 치솟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위대는 낮에도 센트럴과 카오룽 퉁 등 시내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졌다. 카오룽 퉁의 한 쇼핑센터에서는 시위대가 전날에 이어 이틀째 실내에 설치된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에 불을 질러 소방 대원들이 긴급 진화를 했다.

홍콩 정부는 시위가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인력 부족이 심각해지자 엘리트 인력인 ‘교도소 폭동 대응팀’으로 특별경찰을 편성해 투입하기로 했다. 이들은 교도소 폭동에 대응하기 위해 특수 훈련을 받은 정예요원들이다.

특별경찰은 캐리 람 행정장관의 관저 경비 등 중요 시설물 경비 업무를 맡게 될 전망이다. 홍콩 정부청사 등 중요 시설에는 200여 명의 엘리트 경찰이 배치돼 있었으나 이들도 시위 진압에 투입되는 경우가 잦아지자 인력을 충원에 나섰다.

홍콩 정부는 또 오는 19일 퇴임을 앞둔 스티븐 로 경찰청장 후임으로 강경파인 크리스 탕(54) 경찰청 차장을 임명키로 했다. 탕 차장은 지난 6월부터 시위 사태에 대응하는 ‘타이드 라이더’ 작전의 총 책임자다. 범죄 대응 등에서 ‘강철 주먹’을 휘두르는 강경파 인물로 알려졌다.

친중파 진영은 “탕 차장은 범죄와 폭력조직에 무관용을 보여온 인물”이라며 “급진 시위대에 더욱 강경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경찰에 둘러싸여 피를 흘리고 있는 시위대.로이터연합뉴스

중국 국무원 홍콩 연락판공실은 전날 성명에서 “홍콩의 폭력 행위가 테러리즘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다”며 “시위대는 일반 시민의 몸에 불을 붙이는 등 명백한 테러를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성명은 이어 “어떤 문명사회라도 이런 행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며 “홍콩 경찰과 사법 기관이 법과 원칙에 따라 모든 수단을 써 폭력 위법 행위와 테러리즘을 제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관영 글로벌 타임스는 “서구 매체들은 홍콩 경찰의 무자비한 진압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시위대가 벽돌을 투척하고, 기차를 공격하고,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행위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현재 상황은 광기의 끝을 향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환구시보 후시진 총편집인은 논평을 통해 “홍콩 폭도는 가을이 지난 메뚜기 떼에 불과하다”며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