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명세서요? 본 적 없어요”

입력 2019-11-13 11:42 수정 2019-11-13 13:55
민주노총과 전태일재단, 권리찾기 유니온 등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전태일다리에서 '작은사업장 노동자 권리찾기' 캠페인 시작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구인 기자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판매직으로 일하는 40대 여성 A씨는 주중 하루 9시간, 토요일엔 6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그런데 회사에서 급여명세서를 받아본 일이 없다. A씨는 “일한지 1년이 다 돼 가는데 내가 일한만큼 제대로 월급을 받는지 알 길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주노동자인 B씨는 11명이 근무하는 사업장에서 고무부품을 만든다. B씨는 “회사가 매일 15분 일찍 나와 무료 노동을 하도록 강요했다”며 “이주노동자 10명에게는 근무시간 외에 화장실 청소를 시키고 장갑이나 안전화 같은 안전장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13일 전태일 열사 49주기를 맞아 민주노총이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영세사업장의 실태를 공개했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전국 5인 미만 사업체 수는 320만개, 5인 미만 사업체 종사자는 580만명으로 전체 노동자의 27%를 차지한다. 300인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이 57.3%인데 반해 30인 미만 사업장은 노조 조직률이 0.2%에 그쳤다.

소규모 사업장에서는 급여명세서 미교부, 근무시간 외 근무 강요, 불안전한 작업환경 문제 외에도 부당해고, 휴업수당 미지급, 공휴일 연차 강제 사용 등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다양한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화훼단지에서 일하는 C씨는 “대표가 지난달 근무조건을 변경했다며 나만 일방적으로 근무시간을 한 시간 줄였다. 한 달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번 달도 줄어든 근무시간은 그대로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이 근로계약서상 작성한 것보다 줄었을 때 별도 근로계약서를 체결하지 않으면 휴업수당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C씨는 휴업수당을 받지 못했다.

장신구 제조 업체에서 일하는 20대 D씨는 지난 8월 부당해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점심시간에 병원을 갔다 왔는데 공장장이 갑자기 퇴근하라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출근했더니 공장장이 현금을 주면서 얼굴을 탁 치더니 ‘다른 공장 소개시켜 줄테니 잘 가’라며 종이쪽지 하나를 줬다”고 말했다.

금속노조 서울지부 동부지역지회 종로주얼리분회 김정봉 분회장은 “장신구 제조 업계는 대다수가 5인 미만으로 구성돼 있어 소규모 사업장을 대표하는 업종”이라며 “노동자들은 청산가리와 같은 각종 화공약품을 이용해 제품을 생산하고 유해물질에 노출돼 있지만 안전하게 일할 권리는 침해받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지난 7~8월 서울지역 장신구 제작 업계 노동자와 사업주 303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화공약품 사용 노동자의 특수건강검진 실행률은 3.6%, 유해물질 작업환경 측정검사 시행률은 5.6%였다.

민주노총이 지난 1년간의 노동 상담을 분석한 결과 근로 관련 상담자의 72%는 100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고 47.7%는 비정규직이다. 52%는 근속년수 2년 이하의 노동자다.

김경자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은 법제도 사각지대에서, 노조 없는 일터에서 장시간, 저임금, 불안정노동을 하고 있다”며 “일터의 크기에 따라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의 크기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노총은 전태일 열사 50주기인 내년 11월까지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슬로건 아래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거나 중소·영세사업장에 있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로 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