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일리 “트럼프, 대북제재 위해 미치광이 전략 구사”

입력 2019-11-13 08:58 수정 2019-11-13 09:41
헤일리 전 美유엔대사, 자신의 회고록서 주장
트럼프, 中·러 의식해 미친 척 군사옵션까지 거론하며 압박
‘이란 핵 합의’ 탈퇴도 北 의식…“이란과 합의 정도론 만족 못한다” 메시지
헤일리, “김정은 집권 초반 6년 동안 300명 넘게 처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핵 위기가 최고조로 달했던 2017년 역대 최고 강도의 대북 제재를 관철시키기 위해 이른바 ‘미친광이 전략’(madman theory)을 구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 AP뉴시스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유엔 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 전 대사는 12일(현지시간) 발간된 회고록 ‘외람된 말이지만’(With all due respect)에서 유엔 대북제재 결의의 뒷얘기를 소개했다.

북한은 2017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 실험 도발을 이어갔고, 유엔은 고강도 대북제재 결의를 잇달아 채택했다.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참한 만장일치 결의였다.

헤일리는 “유엔대사 재임 기간 세 차례 대북제재를 통과시켰다”면서 “어떤 나라보다 가혹하게 북한을 제재했다”고 자평했다. 이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안보리 이사국들)에게 방금 나(대통령)와 얘기했고 모든 옵션이 테이블 위에 있다고 전하라. 그들이 나를 미쳤다고 생각하게 하라”고 지시했다고 헤일리는 전했다. 북한에 대해 군사옵션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압박을 중국과 러시아에게 가하라는 메시지였다.

헤일리는 “북한의 최대 교역국이자 동맹인 중국이 걸림돌이었다”면서 “안보리 대북제재 협상은 사실상 중국과의 양자 협상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한반도 위기를 피하도록 하겠다는 논리로 중국을 설득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러시아를 향해선 “중국과 먼저 합의한 뒤 ‘이런 식으로 가면 러시아만 김정은 정권과 손을 잡는 처지가 돼 국제적 왕따가 될 것’이라고 은근히 압박했다”고 서술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을 겨냥해 ‘화염과 분노’, ‘완전 파괴’ 등의 표현을 사용했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은 증폭했다. 헤일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인 발언이 많은 비판을 받았으나 사실 나로서는 ‘최대 압박 전략’에 도움이 됐다”면서 “이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고안한 ‘미치광이 전략’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2017년 9월 유엔총회 연설을 앞둔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을 ‘로켓맨’이라고 부르는 게 어떻겠느냐”고 자신에게 물었다고 헤일리는 전했다. 이에 헤일리는 “유엔총회는 교회와 같은 곳이니 하고 싶으면 하라. 어떤 반응이 나올지는 모르겠다”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헤일리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이란 핵 합의'(JCPOA)에서 탈퇴한 조치에도 북한 정권을 겨냥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고 설명했다. 헤일리는 미국의 이란 핵 합의 탈퇴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우리가 이란으로부터 받아들인 종류의 합의는 북한으로부터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신호를 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헤일리는 “우리는 북한이 우리의 레드라인이 무엇인지 알게 해야 했다”고 썼다.

지난 2017년 4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겨냥한 군사 공격에도 대북 메시지가 담겼다고 헤일리는 강조했다. 당시 아사드 정권이 반군 점령지에 신경작용제인 사린가스 공격을 가하자 미국은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격했다.

헤일리는 “시리아에 가한 피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공격이 시리아·러시아뿐만 아니라 북한과 이란에 보낸 메시지였다”고 지적했다.

헤일리는 “김정은 위원장이 가족을 포함해 자신의 정적을 숙청함으로써 권력을 공고히 했다”면서 “집권 초반 6년 동안 처형한 숫자가 300명을 훨씬 넘는다”고 북한의 인권 실태를 고발했다. 이어 “김정은 체제에서는 완전한 감시와 규제를 통해 바깥세상과의 접촉을 완전히 차단한다”면서 “휴대전화는 폐쇄적인 북한판 인터넷으로 막아 놨기 때문에 거의 사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체제 비판을 하거나 금지된 책이나 언론을 볼 경우 강제 수용소로 보내 고문을 하거나 굶겨 죽이고, 또 죽을 때까지 노동을 시킨다”면서 “유엔은 수십만명이 김정은 독재체제의 수용소에서 죽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수용소에서는 강제 낙태를 시키거나 출산한 아이는 살해하기도 하며, 성경을 소지할 경우에도 갇힌다”고 전했다.

헤일리는 북한에 억류됐다가 2017년 미국에 송환된 지 6일 만에 사망한 ‘오토 웜비어 사건’도 회고했다. 헤일리는 “들것에 고정된 채 비행기 계단을 통해 옮겨진 웜비어를 아버지가 허리를 숙여 끌어안았지만, 의식을 차리지 못했다”면서 “웜비어는 눈을 뜨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볼 수 없었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하윤해 기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