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좌파 지도자 모랄레스, 멕시코 망명 “강해져 돌아올 것”

입력 2019-11-12 15:41
에보 모랄레스 전 볼리비아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밤 망명을 위해 탄 멕시코행 비행기에서 멕시코 국기를 들고 있다. 사진=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트위터.

볼리비아 선거조작 의혹으로 불명예 퇴진한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멕시코 망명길에 올랐다.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 상·하원 의장이 물러나면서 정부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볼리비아는 조만간 정권 공백을 메우기 위한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멕시코로 향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밤 트위터에 “저는 멕시코로 떠난다”며 “우리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망명을 허가해준 형제들의 정부(멕시코)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치적 이유로 나라를 떠나는 것이 고통스럽다”면서도 “더 강해져서 돌아오겠다”고 덧붙였다.

멕시코정부는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트윗 이후 그의 멕시코행 비행기 탑승 사실을 확인했다. 마르셀로 에브라르드 멕시코 외교부 장관은 트위터에 “인도주의적인 이유와 그가 위험에 처한 볼리비아의 현재 상황을 고려해 정치적 망명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히며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멕시코 국기를 들고 비행기에 탄 사진을 올렸다. 앞서 좌파 성향의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남미 대표 좌파 지도자인 모랄레스 전 대통령을 끌어내린 볼리비아 시위를 쿠데타라 주장하며 망명을 먼저 제안한 바 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은 2006년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이 된 뒤 14년간 장기집권 해오다 지난달 2일 대선에서도 승리하며 19년 집권의 길을 텄다. 하지만 개표조작 의혹으로 약 3주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었다. 또 미주지역 역내 국제기구인 미주기구(OAS)가 지난 10일 “투·개표에서 다수의 부정과 조작이 발견됐다”는 감사결과를 발표한 이후 군과 경찰까지 퇴진을 압박하자 사퇴했다.

볼리비아는 대통령 사퇴로 인한 정권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선거를 실시할 예정이다. 볼리비아는 대통령뿐만 아니라 부통령, 상·하원 의장, 일부 장관 등이 모두 사퇴해 사실상 정부 기능이 마비됐다. 임시 대통령직은 야당 소속의 제닌 아녜스 상원 부의장이 승계할 가능성이 높다. AFP통신은 아녜스 부의장이 이날 수도 라파스에서 새로운 선거를 실시하겠다며 “모든 볼리비아인의 뜻을 반영하는 선거 절차가 있을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사임으로 개표조작 정국이 일단락됐지만, 이후 혼란이 더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모랄레스 전 대통령의 사퇴 발표 이후 지지자 수천명이 시위를 벌였는데, 시내 곳곳 상점이 약탈되거나 버스가 불타는 등 과격 양상을 띠었다. 수도 라파스에서 모랄레스 지지자와 반모랄레스 시위대가 충돌해 부상자가 나오기도 했고, 호세 바르렌체아 라파스 경찰서장은 일부 경찰서가 시위로 파괴됐다며 군 개입을 요청했다. 윌리엄스 칼리맨 육군참모총장은 11일 “군 지휘부는 국민 간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해 경찰과 합동 작전을 벌이기로 했다”고 밝혔다. 향후 선거가 치러지는 과정에서도 정치적 입장에 따른 지지자들 간의 충돌이 빚어질 수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