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연장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거센 가운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한국에 양보 없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아베 총리는 9일 발매된 일본 월간지 ‘문예춘추’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한일 청구권협정을 지키겠다고 했다”면서 “일본기업의 자산 매각을 실행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자신했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인터뷰에서 한·일 관계에 대해 “일본 기업에 배상을 명령한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판결로 한국 측이 한일 청구권협정 위반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고 비판한 뒤 “국정을 운영하는 정권으로서 지켜야 할 기본은 반드시 양보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 이후 일본은 한일 청구권협정의 위반이라며 강력 반발해왔고, 올해 7월 한국에 수출규제를 적용했다. 이에 한국은 일본의 수출규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지소미아를 종료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양국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강제징용 피해자 측은 판결을 근거로 해당 일본기업의 한국 내 자산을 압류한 뒤 매각 신청을 한 상황이다. 일본은 자국 기업의 자산매각을 양국 관계의 마지노선으로 본다. 한국은 ‘1+1 방안’(한·일 기업의 자발적 위자료 출연)과 ‘1+1+알파’ 방안(한국 정부도 배상에 참여)을 대안으로 제시했지만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4일 이낙연 총리는 일왕 즉위식 참석 차 일본을 방문해 아베 총리와 21분간 단독 회담을 가지며 양국 대화의 물꼬를 텄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4일 태국 방콕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아베 총리와 11분간 환담을 가졌다. 한국 정부가 사진을 공개하며 대화의 실마리를 찾는 것에 의미를 둔 반면 일본 정부는 정식 회담이 아니라 한국 정부 ‘보여주기’ 제스처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또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도 “한국은 매우 중요한 이웃이다. 그래서 국내 반대 여론에도 위안부 합의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형태로 실현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위안부 합의도 현재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에 청구권협정 위반 상태의 시정을 요구하는 정부 방침을 유지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아베 총리는 잡지와 인터뷰에서 자신이 총리직 4연임을 할 수 있다는 시각에 대해 “남은 2년 동안 최선을 다해 결과를 내는 것이 사명”이라면서 부인했다. 아베 총리가 4연임을 하려면 자민당 총재 관련 규약을 고쳐야 한다.
자민당 총재의 임기는 당초 ‘2연임 6년’이었지만 2017년 ‘3연임 9년’으로 수정됐고 아베는 총재 3연임을 통해 총리 3연임을 이뤘다. 최근 자민당 에서는 다시 당 규칙을 개정해 ‘4년 12년’으로 바꾼 뒤 아베 총리의 집권을 연장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지금은 부인하고 있지만 3연임 때처럼 지지자들을 앞세워 당 규칙을 개정해 4연임에 나설 가능성은 충분하다.
아베 총리는 남은 임기 중 달성해야 할 과제로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와 러시아와 일본 사이 영토 갈등 지역인 쿠릴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문제의 해결을 꼽았다. 그는 납치 문제와 관련해 “모든 피해자를 되찾아오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여러 기획를 놓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평생의 숙원이라는 개헌 추진과 관련해서는 “국회의 헌법심사회를 다시 가동시켜 발의해 갈 것”이라며 “논의의 주역은 자민당이 담당한다”고 설명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