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43세까지만 일하라는 국정원…대법 “차별 근거 증명해야”

입력 2019-11-10 11:47 수정 2019-11-10 13:00

국가정보원이 내부규정으로 여성이 주로 근무한 직군의 정년을 합리적 이유 없이 남성과 다르게 정한 것은 남녀고용차별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국정원 공무원 출신 A씨 등 여성 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공무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0일 밝혔다.

A씨 등은 1986년 국정원 공무원으로 채용돼 1993년부터 출판물 편집 등을 담당하는 전산사식 직렬에서 근무했다. A씨가 속한 곳을 포함한 6개 직렬은 IMF(국제통화기금) 경제 위기로 구조조정되면서 폐지됐다. 폐지 직렬 중 원예(園藝)를 제외한 나머지는 여성만 근무했다.

A씨 등은 직렬 폐지 이후 1999년 의원면직됐다가 계약직으로 재임용됐다. 이후 계약을 매년 갱신하다가 근무 상한인 만 43세가 됐고, 부칙에 따라 2년 더 근무한 뒤 2010년 퇴직했다. A씨 등은 퇴직 후 “만 45세까지만 근무하게 하고 퇴직시킨 조치의 근거가 된 국정원 내부규정은 남녀고용평등 등에 위반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쟁점은 국정원의 ‘계약직 직원 규정’이 근무상한연령을 여성만 근무해온 전산사식(출판물 편집 등 업무) 등 직렬은 만 43세, 남성만 일했던 원예(園藝) 등 직렬은 만 57세로 다르게 규정한 것을 남녀고용차별로 볼 수 있는지 여부였다.

1심은 “전산사식 직렬에 주로 여성이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근무상한연령을 43세로 정한 것이 여성을 불합리하게 차별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판결했다. 2심도 계약직 공무원으로서 기간 만료에 의해 퇴직된 것이라며 같은 취지로 판시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1·2심이 국정원 내부규정에서 근무상한연령을 차등 규정한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심리·판단하지 않았다고 판단, 사건을 원심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근무상한연령을 다르게 정한 데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는 국가정보원장이 증명해야 한다”며 “이를 증명하지 못한 경우에는 남녀고용평등법,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당연 무효가 된다”고 판시했다. ‘여초직군’의 근무상한연령을 만 43세로 정한 것에 대해서는 “구 국정원법이나 국정원직원법 등 상위 법령의 구체적 위임을 받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