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여론분석] TV청문회, ‘트럼프 탄핵’ 회의론 넘을까

입력 2019-11-10 08:32 수정 2019-11-10 17:54
트럼프 탄핵 ‘찬성’ 높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아
“트럼프 잘못했지만, 탄핵 사유까진 아냐” 주장도 21% 차지
TV로 생중계되는 공개청문회, 여론 반전시킬지 주목


미국 민주당이 지난 9월 24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조사 카드를 꺼낸지 약 7주가 지났다. 탄핵 조사 초기 국면의 여론조사들을 종합하면, 트럼프 탄핵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높다. 하지만 실제 탄핵이 이뤄질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이 우세하다.

그래픽=전진이 기자

미 하원의 탄핵 조사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리한 증언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너에 계속 몰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실제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오히려 우세하다.

그렇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마음을 놓을 단계는 아니다. 민주당이 13일부터 탄핵 조사와 관련해 공개 청문회를 개최키로 결정한 것은 새로운 변수다. TV로 생중계되는 공개 청문회에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이 나올 경우 트럼프 탄핵 여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

탄핵 찬성 높지만 압도적 우세 아냐

10월 중순 이후 미국 언론들의 여론조사를 보면, 탄핵 찬성 비율이 반대보다 3∼7% 포인트 높게 나온다. 하지만 탄핵 찬성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보기에는 부족한 수치다. 이 정도 격차의 우세로는 탄핵을 장담하기 힘들다는 것이 민주당의 고민이다.


한국과 미국의 대통령 탄핵 절차는 다르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는 2017년 3월 10일 재판관 8명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박근혜 당시 대통령 파면을 결정했다.

하지만 미국에선 이런 절차가 없다. 미국의 탄핵 심판은 정치적 결정에 가깝다. 미국에선 하원(재적의원 과반 찬성)에 이어 상원(재적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 표결로 대통령 탄핵 여부가 결정된다. 한국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도 여론이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미국의 탄핵이 여론에 더 민감한 이유다. 유권자를 의식해야 하는 상·하원 의원들이 대통령의 운명을 정하는 것이다.

특히 미 상원은 현재 공화당이 다수당이다. 탄핵을 위해선 최소 20명 이상의 공화당 반란표가 상원에서 필요하다. 현재 수준인 3∼7% 포인트 우세로는 공화당의 이탈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석이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선 더 폭발적인 탄핵 찬성 여론이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탄핵 반대 여론이 더 높다는 여론조사가 가끔 나오기도 한다.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몬머스대학이 10월 30일부터 11월 3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탄핵 반대가 52%로, 탄핵 찬성 45%보다 7% 포인트 높게 나왔다. 이따금씩 나오는 이런 결론의 여론조사는 탄핵 찬성이 조금 우세하다는 평가에 의문을 던진다.

“트럼프 잘못했지만, 탄핵 사유까진 아냐”

트럼프 대통령 탄핵을 놓고 지지 정당 별로 미국민이 둘로 갈라졌다는 것은 더 이상 새로운 뉴스거리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82∼87%는 탄핵 찬성 입장이고, 공화당 지지자들의 81∼92%는 탄핵 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탄핵의 키는 공화당과 민주당 중 어떤 당도 지지하지 않는 부동층이 쥐고 있다. 하지만 부동층 표심이 탄핵 찬성으로 확실히 기울지 않은 점도 탄핵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분석에 힘을 실어주는 요인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부동층에서 탄핵 찬성이 4∼9% 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폭스뉴스 여론조사와 ABC방송·워싱턴포스트의 공동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층에서 탄핵 반대가 높게 나왔다. 특히 보수 성향 폭스뉴스 여론조사에서는 부동층의 탄핵 반대가 47%로, 탄핵 찬성 38%보다 9% 포인트나 더 높았다.

‘트럼프 탄핵’의 또 다른 장벽은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지만 탄핵까지 될 만한 사유는 아니다”는 여론이다. USA투데이와 서포크대학이 지난달 23∼26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런 답변이 21%를 차지했다.

내년 대선 접전지역에서 “탄핵 반대”가 더 많아

민주당에게 부정적인 소식은 더 있다. AP통신과 NORC센터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3%가 “탄핵 조사에 정치적 동기가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이 정략적인 이유로탄핵 조사를 추진하고 있다는 응답이 과반을 차지한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 칼리지가 2020년 대선의 접전지역 6개주(플로리다주·펜실베이니아주·미시간주·위스콘신주·노스캐롤라이나주·애리조나주)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10월 13일∼20일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도 민주당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이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탄핵 반대가 53%로, 탄핵 찬성 43%보다 10% 포인트 높았다. 내년 대선의 승패를 좌우할 6개 접전주 유권자들 중에서 탄핵 반대 비율이 더 높게 나온 것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에 불길한 예감을 던져준 여론조사 결과였다.

다만, 6개 접전주 유권자들 사이에서 탄핵 조사 자체에는 찬성(50%) 비율이 반대(45%)보다 높았다는 점이 민주당으로선 위안거리가 됐다. 탄핵 조사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는 비율이 높지만, 탄핵에 대해선 반대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이 접전 지역이 민심이라는 게 확인된 셈이다.

TV 생중계 청문회에서 ‘스모킹 건’ 나올까

민주당이 주도하는 하원 탄핵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로 모는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이 군사 지원과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백악관 초청을 미끼로 우크라이나 정부에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 부자의 뒷조사를 요구했다고 증언한 내용이 공개됐다. 대가성이 없었고, 군사지원을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았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정면 배치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진행된 탄핵 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녹다운 시킬 결정타가 없었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민주당은 13일부터 공개 청문회를 실시한다는 히든카드를 꺼냈다. 전·현직 정부 당국자들이 TV로 생중계되는 청문회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치명타를 입힐 증언들을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민주당은 비공개로 증인 조사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청취한 증언들을 녹취록 형태로 공개해왔다. CNN방송은 공개 청문회와 관련해 “탄핵 조사의 새로운 단계”라고 평가했다.

민주당은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탄핵 직전 스스로 사임했던 1973년 ‘워터게이트 청문회’의 재연을 기대하고 있다. 당시 ABC·CBS·NBC방송이 돌아가며 250시간에 달하는 청문회를 중계했으며 시청자 71%가 시청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TV 청문회를 통해 탄핵 여론을 폭발시키겠다는 것이 민주당의 의도다.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은 TV 청문회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또 다른 통화 녹취록을 12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 공개되는 녹취록은 지난 4월 이뤄진 통화 내용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13일 공개 청문회를 실시하기 직전에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공개 청문회 개최에 예민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9일 폭풍 트위터 글을 올리며 탄핵 조사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민주당 계획과 달리 TV 청문회에서 김빠진 증언만 쏟아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