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찰이 기후변화 방지 환경단체인 멸종저항(Extinction Rebellion·XR)의 시위·집회에 금지령을 내린 것은 불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경찰은 도로폐쇄 등 XR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기후재앙을 막기 위해 각국 정부에 즉각적인 조치를 촉구하며 시민불복종 방식의 시위를 펼치는 XR의 행보에도 긍정적인
영국 고등법원은 6일(현지시간) 영국 경찰이 공공질서법 14조를 적용해 XR의 런던 내 집회·시위를 금지한 것을 불법이라고 판결했다고 영국 BBC방송, 가디언이 보도했다. 공공질서법 제14조는 공공집회의 참여 인원수와 집회 장소, 시간 등에 대해 제한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앞서 XR은 지난달 영국 런던, 미국 뉴욕 등 세계 주요 도시에서 도로 점거 시위에 나섰다. 2018년 영국에서 처음 만들어진 XR은 스스로를 ‘국제 비폭력 시민불복종 활동 단체’로 칭하며 도로 점거 등 시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전략을 취한다. 기후변화에 대응을 기다리기엔 너무 늦었다며 정부와 시민들에게 강한 메시지를 주기 위해서다.
이에 영국 경찰은 지난달 14일 공공질서법 제14조에 따라 런던 전체에 시위 금지령을 내렸다. 그럼에도 XR이 시위를 강행하자 활동가들을 체포 및 기소했다. XR은 시위를 금지한 것이 위법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경찰은 시위 금지 조치가 XR이 야기하는 광범위한 혼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XR의 위법행위로 1828명을 체포하고 165명을 위법행위로 기소했으며, 시위 대응에만 24만 파운드라는 막대한 예산을 썼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XR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한 우산 아래 조직됐다고 하더라도 시간과 거리를 두고 분리된 집회는 1986년 공공질서법 제14조 1항이 뜻하는 공공집회가 아니라”라고 밝혔다. 이어 “따라서 XR의 시위는 공공집회라고 할 수 없고 14조 역시 적용될 수 없다”며 “경찰의 금지령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공공질서법은 집회를 ‘전부 또는 일부 개방돼 있는 대중장소에서의 2인 또는 그 이상의 집회’라고 규정한다. 또 14조는 공공집회의 참여 인원수와 집회 장소, 시간 등에 대해 제한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한다.
재판부는 또 이 법안의 목적은 경찰력을 한계까지 밀어붙이려고 의도적으로 고안된 시위를 통제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경찰의 시위 금지로 체포된 유럽의회의원 엘리 차운스는 “이번 판결은 평화적인 집회와 시위에 대한 권리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멸종저항 법률팀 소속 인권변호사 토비어스 가넷은 “멸종저항은 법원 판결에 기뻐하고 있다”며 “이번 판결은 경찰의 금지령이 전례 없고 불법적인 시위권 침해였다는 우리의 믿음을 입증한다”고 말했다. 줄 캐리 변호사는 “(경찰의) 금지조치가 끔찍하고 불규칙적으로 이뤄졌다”고 비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그는 “이번 판결은 항의할 권리가 오랜 시간 민주주의 사회가 지켜온 기본권으로서, 치안유지라는 명목으로 과도하게 금지돼선 안 되는 것이라는 것을 권력자들에게 시기적절하게 상기시킨다”고 덧붙였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