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최저임금 인상제안… 시위대 “그 돈으론 못 살아”

입력 2019-11-07 15:59 수정 2019-11-07 17:25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는 칠레 국민들.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칠레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누적된 경제 양극화에 따른 시위가 3주째 이어지자 이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일련의 조치 중 하나다. 하지만 근본적인 불평등은 해결할 수 없는 임시조치라는 입장이라서 시위가 잦아들지는 미지수다.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최저임금으로 월 470달러(약 54만5000원)을 보장하는 법안에 서명했다고 AP통신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칠레 중도우파 정부는 시민들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여러 개혁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지난 1일에는 법인세 감면과 ‘특별 영업세’ 우대 조치 등 부자 감세로 지적받는 정책을 철회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칠레가 일련의 조치들을 ‘단순한 반창고’라며 17년간의 독재정권을 끝내고 1990년 민주주의로 복귀한 이후 해결되지 않은 깊은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플로르 실바(70)는 “최저임금을 올리겠다는 피냐라의 계획은 나쁜 농담처럼 보인다”며 “어느 누구도 그 돈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물가가 계속 오르기 때문에 동전 하나라도 우리는 절박하다”고 말하며 칠레 국민들의 처지를 내비쳤다.

칠레 수도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호르헤 카브레라는 “지금까지 정부가 취한 조치는 ‘될 대로 되라’는 식이다”라며 “정부는 일시적인 제안으로 날 설득시킬 수 없다. 우리는 30년 이상 이것들(사회서비스와 경제적 평등)을 요구해왔다”고 말했다.

지난달 지하철 요금 인상으로 시작된 칠레 소요사태는 광범위한 변화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로 번지고 있다. 칠레는 남미에서는 경제 대국으로 일컬어지지만 2017년 기준 상위 1%의 부자들이 부의 26.5%를 차지하는 등 양극화가 극심한 것으로 유엔 중남미·카리브경제위원회 조사 결과 나타났다.

많은 칠레 국민들은 ‘신자유주의’(neoliberal) 경제모델이 칠레를 남미의 성공사례처럼 보이게 하지만, 실제로는 돈을 지불할 여유가 있는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연금시스템과 공공·민간 보건 및 교육시스템을 숨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하철 요금은 약 50원 수준으로 올렸지만, 그간 누적된 불만을 터뜨리는 촉매가 됐다.

시위 대부분은 평화로웠지만 일부에선 충돌이나 약탈, 반화 등 폭력사태가 일어나 최소 20명이 사망했다. 이로 인해 칠레는 이달과 다음 달 예정됐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와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5) 개최도 포기했다. 유엔 인권팀은 시위 도중 칠레 경찰에 의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진 수백명의 사람들에 대한 증언을 수집하고 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