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격범 유인해 아이 8명 살린 엄마… 멕시코 마약 카르텔 생존담

입력 2019-11-07 11:32
5일(현지시간) 친척들이 멕시코 북부 가족 총기 난사 사건 현장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피해 차량은 완전히 불에 탔다. AFP/연합뉴스

멕시코 마약 카르텔 총격 사건에서 살아남은 아동 8명의 증언이 전해졌다. 총기 난사가 시작되자 엄마는 차량에서 내려 총격범을 유인했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 아이들을 구했다.

AP통신은 지난 4일(현지시간) 멕시코 북부 치와와~소노라주 도로에서 벌어진 멕시코 마약 카르텔 총격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의 생존 증언을 6일 보도했다. 미국·멕시코 이중국적자인 피해 가족 중 여성 3명, 아이 6명이 사망했으며 아동 8명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아이들 전원은 공격 받은 3대 차량 중 1대에 타고 있었다. 아이들은 운전을 하던 엄마가 차에 탄 자신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을 자처한 상황을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여성은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멀리서 총기 난사가 시작되자 차에서 내려 손을 든 채로 약 15m 떨어진 지점까지 걸어갔다. 총격범들이 아이들이 남아있던 차량이 아닌 자신을 겨냥하게끔 유인한 것이다.

여성은 저항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두 팔을 들어 올리고 이동했지만 카르텔 조직은 그에게 총을 쐈다. 나머지 두 대 중 한 대의 차량에는 불을 질러 차량에 남아있던 탑승자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6일(현지시간) 친척들이 멕시코 북부 가족 총기 난사 사건 현장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피해 차량은 완전히 불에 탔다. EPA/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멕시코 북부 가족 총기 난사 사건 현장에서 불에 탄 피해 차량을 옮기는 모습. AFP/연합뉴스

아이들은 엄마가 총격범들의 시선을 잡고 있는 사이 빠져나와 비포장도로 옆 수풀 더미로 숨었다. 데빈 블레이크 랭퍼드(13)는 “엄마와 형제들이 총에 맞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서 아이들을 어떻게든 숨겨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살아남은 아이들을 모아 수풀 더미에 숨긴 뒤 도움을 청하러 나섰다”고 말했다.

데빈은 무려 22.5㎞를 걸어서 친척들이 있는 동네로 향해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풀에 숨어 있던 코디 그레이슨 랭퍼드(8)는 턱에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린 채로 기어가다 구조됐다. 맥킨지 랭퍼드(9)는 데빈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하며 주변을 헤맸고, 친척들은 맥킨지를 찾지 못해 6시간가량 애를 먹었으나 가까스로 아이를 발견했다.

이렇게 살아남은 8명 중에는 겨우 걸음마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영아도 있었다. 8명 중 5명은 심한 총상을 입어 멕시코 군 헬기 편으로 미국 애리조나주 병원으로 이송됐다. 부상 입지 않은 3명은 소노라주 라모라 마을에서 친척들이 돌보고 있다.

AP통신은 총격을 저지른 카르텔 조직이 멕시코 북부 후아레스 마약 카르텔의 무장분파인 ‘라 리네아’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이들 조직원은 무장한 채로 시날로아 카르텔 관할 영역에 들어와 매복하고 있다가 경쟁 조직원들을 공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랭퍼드 가족의 차량 3대를 라이벌 조직의 차량으로 오인해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총격 사건의 용의자 중 한명은 6일 애리조나주와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체포됐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