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아 수억인데 난 왜 7천인가” 박창진의 울분

입력 2019-11-06 19:56 수정 2019-11-06 20:58
대한항공이 ‘땅콩 회항’ 사건의 최대 피해자인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에게 7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과 관련, 박 지부장이 반발하고 있다. 그는 “재벌 갑질로 짓밟힌 존엄을 제대로 인정했다고 볼 수 없는 판결”이라면서 대한항공 등을 상대로 추가 법적 대응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이 지난 3월 27일 오전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 본사에서 정기주주총회가 끝나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이 부결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김지훈기자

박 지부장은 6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항소심에서 제가 승리했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저는 전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5일 박 지부장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대한항공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항소심에서 대한항공이 박 지부장에서 7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대한항공의 불법 행위 내용을 볼 때 회사가 지급할 위자료를 1심보다 높게 잡아야 한다고 설명하면서도 박 지부장에 대한 기내방송 자격 강화 조치에 대해 부당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는 등 나머지 항소는 모두 기각했다.

조 전 부사장은 2014년 12월 5일 미국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박 지부장에게 20여분간 폭언을 퍼붓고 비행기를 되돌린 뒤 박 지부장을 내리게 하는 등 갑질 논란을 자초했다.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불법 고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2019년 7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권현구 기자

이 일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아 휴직했던 박 지부장은 2016년 5월 복직하는 과정에서 인사상 불이익을 당했다며 조 전 부사장과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대한항공이 박 지부장에서 20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조 전 부사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대한항공에 대한 강등처분 무효 확인 청구는 기각했다.

그는 1심 판결 보다는 나아졌지만 2심 판결 또한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박 지부장은 “(조현아 전 부사장은) 경영 책임을 노동자에게 넘기며 희생을 강요하고 무수한 갑질로 스스로 기업 가치를 훼손하고도 노동자는 생각도 하지 못할 금액의 퇴직금을 챙긴 반면 법원은 저 박창진의 존엄을 7000만원으로 판결했다”면서 “이는 우리 사회가 세습경영과 자본권력으로 무장한 이들의 목소리를 더 듣는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 전 부사장은 대한항공에서 퇴직금으로 6억8000만원을 받았다.

박창진 페이스북 캡처

앞서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일부 언론과 국민들조차 자신을 향해 ‘갑질을 트집 잡아 돈을 뜯어내려고 한다’고 몰아세우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 지부장은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미국에서 손해배상 소송을 하자 한국에서는 ‘욕심 부리는 나쁜 놈’이라는 비난이 난무했고, 일부 언론은 ‘헉! 어마어마한 거액 요구’ 등의 제목으로 절 비판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배상을 받을 수 없다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박 지부장은 “거대 자본권력을 상대로 저항을 한 제가 겪을 미래는 자명해 보였다”면서 “제가 미국인이었다면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인간의 가치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두고 한국과 미국은 왜 다른 판단을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적었다.

박 지부장은 인간의 권리와 존엄을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선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는 “이제 사람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하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돼야 한다”면서 “이번 판결은 제 전의를 더욱 붙타오르게 한다. 추가적인 법적 대응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