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5일 관계사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강제수사를 개시한 ‘포항 지진’ 수사의 관건은 지열발전소에 주입된 물이 어떻게 지진을 촉발했는지를 규명하는 일이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 조사단이 지난 3월 지열발전이 지진의 원인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해 인과 관계 규명은 크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지열발전 주관사가 전혀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검찰 수사는 일종의 ‘과학 논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과학기술범죄수사부(부장검사 김윤희)는 2017년 11월 15일 발생한 포항 지진이 지열발전사업 결과 벌어졌다는 판단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이 그동안 해외 논문을 수집하고 정부조사연구단의 최종 보고서 등을 참고해 압수수색에 돌입한 것을 감안하면, 검찰은 넥스지오 등의 주장을 배격할 만한 근거를 포착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관계자는 6일 “과학기술적으로 복잡한 분야”라면서도 “조사단의 검증 결과가 이 사건의 혐의 유무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향후 검찰 수사는 지열발전사업과 포항 지진 사이의 연관성을 과학적으로 입증,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를 규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책임 당사자로 지목된 이들은 “우리 탓이 아니다”는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포항지열발전 사업을 주관한 넥스지오와 자회사 포항지열발전 등은 포항 지진 피해자들로 구성된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가 지난해 10월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맞서 “지열발전 연구개발사업이 포항 지진의 원인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서를 지난해 12월 대구지법 포항지원에 제출했다.
넥스지오 등은 의견서에서 “수리자극 주입시기와 포항 지진 발발 시기 사이에 2개월의 시간적 이격이 있다”며 “수리자극 시 주입한 물의 양이 규모 5.4의 지진을 일으키기에는 지나치게 적다”는 근거를 들었다. 특히 이들은 주입된 물의 양이 지진을 낳기에는 턱없이 적은 0.1%에 불과하다고 의견서에 명시했다. “포항 지진은 넥스지오 등의 굴착과 물 주입 때문이었다”는 정부조사연구단의 지난 3월 조사 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넥스지오 등은 또 지열발전사업 과정에서 모니터링 시설을 설치하는 등 엄격한 관리 기준을 적용했다고 주장했다. 관리 방안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에 보고했다고 강조했다. 검찰은 5일 압수수색에서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을 압수수색했다. 넥스지오 등의 말대로 관리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됐는지도 검찰 수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포항 지진 피해자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해 살인을 당하고 상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포항지진 범시민대책본부’는 지난 3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윤모 넥스지오 대표와 박모 포항지열발전 대표를 살인 및 상해 혐의로 고소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넥스지오 등 업체는 2017년 4월15일 규모 3.2의 유감지진이 발생해 물 주입행위를 계속 할 경우 지진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지열발전소의 가동 중단을 지시하지 않았다. 이후 2017년 8월 17일부터 9월 18일까지 또다시 물을 주입했고 같은해 11월 15일 5.4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다. 대책본부는 이에 대한 인과관계를 수사해 달라는 입장이다.
대책본부는 검찰에 포항지열발전 관련 컨소시엄기관에 대한 과실이나 자금흐름, 넥스지오를 통한 주가조작 의혹, R&D 사업을 빙자한 ‘예산 빼먹기’ 의혹에 대한 수사도 요청한 상태다.
구승은 기자 gugiz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