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태없는 ‘학종’ 실태조사…디테일 건너뛰고 ‘정시확대’ 걸림돌만 제거?

입력 2019-11-06 17:24

교육부가 지난 5일 발표한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 결과는 ‘속빈 강정’이란 평가를 받는다. 여러 수치들이 나열됐지만 정작 실태를 확인할 단서 하나 남기지 않은 잘 걸러진 정보공개였다.

“‘영재·과학고, 외고·국제고, 자사고, 일반고 순으로 고교가 서열화됐다.” “일반고 학생의 내신 성적이 대학에서 홀대받는 듯하다.” “영재고·과학고 학생이 일반고 학생보다 수시 합격률이 높다.”

이처럼 학생·학부모에게 상식으로 통용되는 정보로 가득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주문한 정시비중 확대에 걸림돌로 작용할 정보는 애써 의미를 축소한 흔적도 있었다. 이번 교육부 학종 실태조사 발표의 문제점을 3가지로 요약했다.

어정쩡한 조사 대학 선정과 익명 발표

이번 실태조사는 13개 대학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건국대 경희대 고려대 광운대 동국대 서강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춘천교대 포항공대 한국교원대 홍익대다. 모호한 조합이다. 포항공대 춘천교대 한국교원대가 끼었으니 서울 소재 대학으로 묶을 수 없다. 그렇다고 성적 상위권 대학이나 주요 대학으로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일반적으로 서울 주요 대학 혹은 상위권 대학으로 분류되는 한양대나 중앙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서울시립대 등이 빠져 있다.

홍익대가 포함됐으므로 학종 비중이 높고 특목·자사고 출신을 선호하는 곳으로도 보기 어렵다. 춘천교대와 한국교원대가 들어갔으니 종합대학으로도 부르기 어렵다. 대학 규모나 예산도 천차만별이다. 이들 대학을 규정하면 ‘정부 실태조사를 받은 13개 대학’이다. 이런 대학 조합으로 추출된 데이터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어렵다.

교육부는 여기에 더해 익명성을 허락했다. 서울대와 한국교원대, 춘천교대처럼 대학 규모와 소재지, 대입 전형방식 등이 다른 대학을 묶어 수치를 내놓으면서 대학 이름을 공개하지 않으면 정보의 가치는 현저하게 하락한다. 예를 들어 교육부는 A대학의 일반고 출신 합격자의 평균 내신등급이 1.30이고 외고·국제고 출신은 2.86이라고 밝혔다. 일반고 1등급을 외고 3등급으로 동급으로 취급하는 대학이 서울 소재 대학인지 교원 양성대학인지 규모가 큰지 작은지 가늠하기 어렵게 된다.

정작 중요한 디테일은 없었다.

교육부는 실태조사에서 고교 소재지별 학종과 수능 합격자 비율을 공개했다. 서울과 광역시, 중소도시, 읍면 4가지로 구분했다. 서울 소재 고교에서 13개 대학에 합격한 비율을 보면 학종 27.4%, 수능 37.8%였다. 광역시는 학종 22%, 수능 17.5%, 중소도시는 학종 35.7%, 수능 37.9%, 읍면은 학종 15%, 수능 8.6%란 수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이 수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긴 어렵다. 예를 들어 민족사관고(강원도 안흥면)나 용인외고(용인시 모현읍), 강원외고(강원도 양구읍)같은 대학 입시에 강점을 보여 온 학교들이 읍면지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실태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적어도 시군구별 합격자 비율이 공개돼야 한다. 서울 내에서도 강남이나 목동 같은 교육특구와 다른 지역은 처지가 다르다. 광역시끼리도 처지가 다르다. 광역시 내에서도 예컨대 부산 해운대구나 대구 수성구같은 교육 특구와 인천의 도서벽지를 하나로 묶어 통계를 잡아서는 왜곡된 수치가 나올 수밖에 없다. 중소도시 역시 자사고나 외고, 비평준화 일반고 등이 산재해 있다.

고교유형 역시 마찬가지다. 교육부는 영재고·과학고, 외고·국제고, 자사고, 일반고로 고교 유형을 분류했다. 자사고는 전국단위 자사고와 미달 사태가 나는 광역단위 자사고들을 묶어 놨다. 일반고 중에는 비평준화 일반고, 전국 단위로 학생을 선발하는 학교들이 있다. 이런 일반고는 자사고나 외고 뺨치는 진학 실적을 보이는 곳도 적지 않다. 이런 일반고들이 통계에 섞이면 보통 일반고 학생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파악할 수 없게 된다.

예를 들어 실태조사에서 나온 일반고 학생의 13개 대학 합격률을 보면 수능에서 16.3%, 학종에서 9.1%다. 만약 이 수치를 보고 “일반고가 수능에서 불리한 거 아니다”고 해석한다면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비평준화 일반고 학생들이 대거 13개 대학에 지원했다면 수능에서 16.3%란 수치는 착시일 수 있다.

정시확대에 유리한 수치는 강조, 불리한 수치는 뒤로

교육부가 정시비중을 늘리는데 불리한 정보를 신중하게 취급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인다. 교육부는 문 대통령이 정시 확대를 공식화하기 전까지는 학종은 저소득층과 비수도권 학생에게 유리하고, 수능을 확대하면 특목·자사고나 교육특구 학교들이 유리해진다는 입장이었다. 그동안 정시 확대를 반대하는 명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꼭 정시가 일반고에 불리한 건 아니다’고 해석할만한 내용을 앞세우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예가 고교유형별 합격률이다. 일반고 학생이 수능으로 13개 대학에 합격한 비율은 16.3%다. 과학고·영재고는 24.3%다. 8%포인트 차이다. 그러나 학종의 경우 9.1%대 26.1%로 3배나 차이가 난다. 이 통계만 보면 수능을 늘리면 고교 격차가 줄어들 것처럼 보인다. 교육부가 공개한 자료를 보면 이 부분을 막대그래프로 만들어 강조했다.

수능을 확대하면 저소득층 학생이 불리해진다는 통계는 맨 뒷부분에 배치했다. 기초생활수급자~3구간 저소득층 학생은 학종 합격자 가운데 16.2%였다. 수능은 10.7%였다. 저소득층 학생이 수능보다는 학종으로 합격을 많이 한다는 걸 보여준다. 정시를 늘리면 저소득층에게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주장이 가능하다.

그러나 교육부는 기회균형전형으로 통계를 살짝 비튼다.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 대상 기회균등전형이 학종 합격자에 포함돼 있어 16.2%는 부풀려졌다는 취지다. 기회균등전형을 제외한 학종 합격률은 12.6%, 수능은 10.2%다. 격차가 훨씬 줄어든다. 기회균등전형을 제외하면 학종과 수능의 합격자 비율이 역전되는 개별 대학 사례들까지 제시하는 등 공을 들었다. 교육부가 정시 확대를 반대할 때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