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유종이면서 세계자연보전연맹이 멸종위기종으로 지정한 제주 한라산 구상나무가 빠른 속도로 고사하고 있다.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한 것도 문제지만, 노령나무의 고사율이 높고 어린나무는 잘 나오지 않는 천이 교란 상태가 이어지면서 구상나무 숲의 쇠퇴 속도는 가팔라지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6일부터 3일간 제주 오션스위츠 호텔에서 ‘한라산 구상나무 보전 전략’ 마련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을 열고 있다. 일본 대만 폴란드 러시아 등 국내외 학자들이 구상나무(전나무류)의 실태와 보전 과제에 대해 각 지역의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고정군 박사(생물학)는 ‘한라산 구상나무림의 동태’ 주제발표에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한라산의 모든 해발 고도에서 구상나무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조사에 따르면 2006년 738.3㏊이던 한라산 구상나무숲의 면적은 2015년 626㏊로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진달래밭에서 성판악 등산로 구간의 감소 폭이 가장 컸다. 11도 이상 높은 경사도에서 감소 현상이 확인됐다. 방위별로는 한라산 동쪽과 남동쪽에서 감소 폭이 컸다. 대규모 쇠퇴는 영실 서쪽은 해발이 낮은 지역에서, 동쪽은 1700~1800m 고지에서 또렷하게 관찰됐다.
밀도별로는 고~중밀도 구상나무 숲에서 면적 감소가 도드라졌다. 전체적으로 구상나무 숲이 점차 저밀도화 되는 경향을 보였다.
수목 탄력도를 확인한 결과, 고사 형태는 통째로 죽은 나무 형태가 가장 많았다. 가지가 꺾여 죽은 나무, 쓰러져 죽은 나무의 비율은 비슷했다. 구상나무 숲 내 고사비율은 1996년 평균 15%에서 2014년 67%로 급증했다. 고정군 박사는 “구상나무의 고사는 1990년대에도 있었지만, 당시에는 구상나무 숲이 건강하게 존재했었다”고 최근과의 차이를 설명했다.
1990년대와 2010년 이후 구상나무 쇠퇴의 또 다른 차이는 발생 원인에서도 찾을 수 있다. 학계에서는 1990년대까지는 구상나무의 노령화, 개체 간 경쟁 등 자연 요인이 고사의 주요인이었지만 2000년 이후에는 기후 변화, 바람, 잦은 태풍, 적설량 감소 등 자연재해가 주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병해충 가능성도 함께 제기된다.
고 박사는 “10년간 관찰해보니 여러 이유로 한라산 구상나무가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그동안 우리가 구상나무 감소 문제에 큰 관심을 두지 못 해왔다. 여러 형태의 보전 대책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제주는 세계 최대의 구상나무 군락지다. 구상나무와 같은 전나무류의 생장쇠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고 있어, 이에 대한 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을 위한 연구가 국내외 전문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제주도는 2017년 한라산 구상나무 보전을 위한 10개년 계획을 마련하고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를 중심으로 자연 메커니즘 규명 연구, 고사 원인 조사, 어린나무 양성, 복원 메뉴 개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한라산 구상나무는 해발 1510∼1600m 구간에 가장 많이 분포하고 있다.
제주=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