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평화체제’ 강조…북핵 폐기없는 북미합의 먼저 추진하나

입력 2019-11-06 10:29 수정 2019-11-06 11:04
알렉스 웡 美 부차관보 “한반도 70년 전쟁 상태 영속돼선 안 돼”
美, 北에 종전선언·평화협정·북·미 국교 정상화 시사
美, 북핵 폐기와 대북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빅딜’서 ‘스몰딜’로 방향 전환
北 입장선 ‘제재 해제’ 언급 없어 평화체제 응할지 여부 지켜봐야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는 5일(현지시간) “한반도에서 지난 70년 동안 이어져 온 전쟁 상태가 영속돼선 안 된다”면서 “평화체제는 북한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비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알렉스 웡 미국 국무부 북한 담당 부차관보가 5일(현지시간)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미나에 참석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웡 부차관보는 또 “북한의 대량살상무기(WMD)가 체제보장의 안전판이 아닌 불안정 요인”이라면서 ‘전략적 전환(strategic shift)’을 촉구했다.

웡 부차관보의 이번 발언은 북한을 북·미 협상 테이블로 이끌기 위해 종전선언 체결 등 체제 안전 보장 메시지를 북한에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는데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을 감안해 북·미 관계 진전을 위해 평화체제를 먼저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로드맵을 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와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를 맞교환하는 ‘빅딜’ 방식의 일괄타결을 고수했던 미국 정부가 ‘스몰딜’로 방향을 전환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선 국면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북핵 폐기와는 연관이 없는 북·미 합의를 추진할 것이라는 우려도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웡 부차관보는 이날 미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세미나에 참석, 개회사를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의 개념은 매우 복잡하면서도 확실한 형태가 없다”면서 “(평화체제는) 우리가 북한과 협상을 통해 함께 다뤄야 하는 광범위한 이슈들을 수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평화체제의 개념은 강렬하다”면서 “그것은 열망을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웡 부차관보는 또 “안정적인 평화체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서명한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핵심 기둥 중 하나”라며 “평화 체제는 북한을 위한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비전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웡 부차관보는 “평화체제 개념은 북한의 WMD가 북한을 위한 안전보장의 원천이라기보다는 북한의 불안정에 있어 핵심 요인이라는 점을 보다 분명하게 주는, 한반도에서의 전략적 전환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설명했다.

웡 부차관보는 ‘70년 전쟁 상태’ 종식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북·미 국교 정상화 등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했다. 체제 안전이라는 선물로 북한을 대화 테이블에 이끈 뒤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그러나 평화체제 구축은 필요한 단계지만 북·미 양측이 원하는 알맹이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으로선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고, 북한 입장에선 가장 강력하게 원하는 제재 해제에 대한 언급이 없다. 북한이 미국의 평화체제 제안에 응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웡 부차관보는 북·미 비핵화의 협상의 새로운 ‘키 맨’이다. 그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 밑에서 대북 특별 부대표를 맡아왔다. 비건 대표가 국무부 부장관으로 승진하면서 향후 북·미 협상에서 웡 부차관보의 역할이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비건 대표의 부장관 인준이 상원에서 통과될 경우 웡 부차관보가 북·미 실무협상에 대한 일상적 관리를 맡게 될 것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하기도 했다.

웡 부차관보가 외부 행사에서 공개 발언에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웡 부차관보는 북·미 실무협상과 북·미 정상회담 계획 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로 대답을 피해갔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