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진 구속까지…팬덤·소비자운동 힘 보여준 ‘프로듀스X 사태’

입력 2019-11-06 04:00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101'에서 생방송 투표를 조작한 혐의를 받는 안준영 PD가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생방송 투표 조작 의혹을 받고 있는 엠넷(Mnet)의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X 101’ 제작진이 구속됐다. 네티즌 팬들의 의혹제기로 시작된 이번 사태를 두고 연예인 팬덤과 소비자운동이 결합한 보기 드문 사례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불고 있는 ‘공정’ 바람과 맞물려 사건을 둘러싼 파문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5일 사기 등 혐의를 받고 있는 프로듀스X 101 제작진 안준영 PD와 김용범 CP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날 함께 영장실질심사를 받은 다른 제작진 2명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명 부장판사는 안 PD에 대해 “범죄 혐의가 상당부분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며 “본 건 범행에서 피의자의 역할 및 현재까지 수사 경과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타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김 CP에 대해선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피의자의 지위와 현재까지의 수사 경과 등에 비춰 구속 사유와 필요성, 타당성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이날 오전 엠넷을 소유한 CJ ENM의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사무실을 압수수색, 업무 관련 자료를 추가로 확보했다. 경찰은 연예기획사 1곳도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지난 7월 관련 수사 착수 이후 여러 차례 CJ ENM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바 있다.

‘프로듀스X 101’은 엠넷의 아이돌 육성 프로젝트 ‘프로듀스’ 시리즈의 네번째 프로그램이다. 그룹 아이오아이와 워너원, 아이즈원 등 유명 인기 아이돌그룹이 이 시리즈를 통해 탄생했다. 이번 프로그램인 프로젝트X 101은 ‘당신의 소년에게 투표하라’는 문구 아래 유료문자로 진행됐다.

이번 사건은 발단부터 팬덤과 온라인 소비자운동이 결합된 형태로 일어났다. 지난 7월 방송된 프로듀스X 101 마지막 생방송 경연에서 마지막 시청자 유료 문자투표 결과 유력 데뷔 주자로 예상된 연습생들이 탈락하고 의외의 인물들이 데뷔조에 포함되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탈락한 유력 연습생들의 팬덤을 중심으로 결성된 ‘프듀X 진상규명위원회’가 의혹 제기를 주도했다.

팬들은 1위부터 20위까지 득표 수가 모두 특정 숫자의 배수로 설명된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1등과 2등 득표수 차이가 2만9978표인데 3등과 4등의 차이도 2만9978표, 7등과 8등의 차이도 2만9978표라는 식이다. 최종화에서 투표가 가능했던 20명 중 13명의 득표에서 이처럼 똑같은 차이가 반복됐다.

팬들은 이외에도 1위부터 20위까지 득표 수가 모두 특정 숫자(7494.442)의 배수로 설명된다는 해석도 내놨다. 1위부터 20위까지 문자투표 득표 숫자를 모두 이 숫자의 배수를 반올림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이를 적용하면 20명 중 19명의 득표수가 들어맞는다. 단 한 명의 차이의 경우 계산 값에서 47을 74로 잘못 적은 결과라는 추정도 나왔다.

의혹 초기만해도 순위에 이상이 없다는 입장으로 일관하던 엠넷 측은 논란이 커지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시청자들도 엠넷 소속 제작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위계에 의한 업무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경찰은 안 PD가 유흥업소에서 연예 기획사로부터 수차례 접대를 받고 증거를 없애려 한 정황까지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작진이 구속된 이날 엠넷은 사건 발생 3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공식 사과했다. 엠넷은 이날 “‘프듀X’와 관련해 물의를 일으킨 점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프듀X’를 사랑해주신 시청자와 팬, ‘프듀X’ 출연자, 기획사 관계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입장문을 발표했다. 엠넷은 “앞으로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수사 결과에 따라 책임질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조효석 방극렬 박상은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