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도 험지 출마해라”, 쇄신론 빗발치는 한국당

입력 2019-11-05 21:59 수정 2019-11-05 22:00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문재인 정권 전반기 소상공인 정책평가' 대토론회에 참석해 기자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뉴시스

박찬주 전 육군대장 영입 논란을 계기로 자유한국당 내부에서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간 한국당의 문제점으로 꼽혀온 지도부의 뒤떨어진 현실 인식과 황교안 대표의 ‘밀실 리더십’이 박 전 대장 영입 과정에서도 재현되면서 쌓여 왔던 의원들의 불만이 수면 위로 표출된 것으로 풀이된다. ‘내부총질’이란 격한 단어까지 써가며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던 황 대표는 박 전 대장 영입을 사실상 철회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의원들이 지도부를 포함한 당의 전면적 쇄신을 요구하고 있어 황 대표가 이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쇄신론 요구가 ‘자질론’으로 옮겨붙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태흠 한국당 의원은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모든 현역 의원은 출마 지역, 공천 여부 등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당의 결정에 순응해야 한다”며 “특히 영남권, 서울 강남 3구 등 3선 이상 선배 의원님들께서는 정치에서 용퇴하시든가 당의 결정에 따라 수도권 험지에 출마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정권에서 친박근혜계로 꼽혔던 김 의원은 “당대표부터 희생하는 솔선수범을 보여야 한다.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는 뜻)의 자세로 인적 혁신을 이뤄내고 건강한 정당으로 변모해야 국민들의 신망을 회복할 수 있다”며 황 대표의 책임론도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김태흠 의원이 5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영남권·강남3구 중진 용퇴를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정당 복당파 출신인 장제원 의원도 최근 나란히 출범한 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총선기획단을 비교해가며 지도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한국당은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키면서 주요 보직에 영남·친황교안계 의원들을 임명했다. 장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민주당은 총선기획단에 강경파, 온건파, 주류, 비주류, 청년, 여성 등은 물론 당에 쓴소리를 해 온 금태섭 의원까지 중용했다”며 “당의 포용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려는 민주당의 한 수”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당도 달라져야 한다. 지지층만 바라보는 폐쇄적인 모습을 탈피해야 한다”며 “피해의식에 사로잡힌 ‘과거형 인재’가 아니라 외연 확장을 위한 ‘미래형 인재’를 영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세연·신상진 의원과 홍준표 전 대표도 비슷한 맥락에서 비판의 목소리를 보탰다.

계파를 불문하고 소속 의원들이 연달아 당 쇄신을 촉구하고 나선 것은 황 대표 취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공천 가산점과 표창장 논란으로 조국 정국에서 얻은 반사이익을 깎아먹은 데 이어 박 전 대장 영입 문제로 당이 또다시 구설에 오르자 의원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부닥친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서는 여권이 조국 정국을 반성의 계기로 삼아 내부 쇄신의 고삐를 바짝 당기는 데 반해, 당 지도부는 조국 낙마 성과에만 취해 실책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한 재선 의원은 “당이 어떤 개혁이나 혁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답답한 일들만 계속 벌어지고 있다”며 “김태흠 의원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당내 개혁 물결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의원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내부 반발이 잦아들지 않자 황 대표는 “국민의 관점에서 박 전 대장 영입을 판단하겠다”며 영입 철회를 시사했다. 김 의원의 쇄신론에 대해서도 “충정에서 한 말씀”이라고 평가했다. 공천 관련 이야기를 ‘해당 행위’로 규정하고 내부총질을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던 것에서 달라진 모습이다. 박 전 대장 논란이 계속 이어질 경우 리더십 위기론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진화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은 당초 계획을 변경해 당분간 인재영입 발표를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당 관계자는 “여기서 더 나가면 당대표의 자질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다. 같은 문제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황 대표가 험지에 출마하는 모습으로 리더십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태흠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황 대표 스스로 험지를 택하는 마음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본인을) 지도자급의 한 사람이 아니라 구성원의 일부로 생각하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근혜정부에서 청와대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지낸 유민봉 의원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할 예정이다. 다만 유 의원은 이미 불출마자로 분류돼 있어 파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심우삼 김용현 기자 s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