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지난 1979년 테헤란 미국 대사관을 점거한 지 40주년을 맞은 4일(현지시간) 미국과 이란은 각각 추가 경제제재와 2015년 핵합의 위반을 주고받으며 날선 신경전을 이어갔다.
미국 재무부는 이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과 측근 등 정권 핵심인사 9명과 기관 1곳에 대한 추가 제재를 단행했다.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하메네이, 비서실장 아야톨라 무함마디 골파예가니, 사법부 수장 호자톨레슬람 에브라힘 라이시 등이 명단에 포함됐다. 정권의 친위대 역할을 하는 이란 혁명수비대와 관련된 군 기관 1곳도 제재 대상에 올랐다. 미 정부는 혁명수비대를 테러기관으로 규정하고 이미 제재를 가하고 있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설명을 통해 “이번 제재 대상들은 1983년 레바논 베이루트 미 해병대 막사 폭파 사건, 1994년 아르헨티나 유대인 센터 공격 사건, 민간인들을 대상으로 한 고문 및 살해·탄압 등 광범위한 해악적 사건들과 연계돼있다”고 밝혔다. 한 고위 당국자도 “우리의 조치는 이란 최고지도자를 둘러싼 군·외교 분야 이너서클의 금융 자산을 추가로 정조준하는 일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테헤란 등 이란 주요 도시에서 미 대사관 점거 40주년을 기념하는 반미 집회가 열린 가운데 이란 원자력청의 알리 아크바르 살레히 청장은 고성능 신형 원심분리기를 추가 가동해 농축우라늄 생산량을 두 달 전보다 10배 늘렸다고 밝혔다. 살레히 청장은 “오늘 우리는 30기의 IR-6의 추가 가동을 확인했다”며 “이로써 이란의 하루 농축우라늄 생산량은 5㎏에 달한다”라고 말했다. 두 달 전 이란은 30기 가량의 IR-6에서 450g의 농축우라늄을 생산했는데 이제는 60기의 IR-6에서 10여배에 달하는 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015년 미국 등 6개국(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과 체결한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에 따르면 이란은 구형 원심분리기인 IR-1만 가동할 수 있지만, 현재 이를 어기고 구형 모델보다 우라늄 농축 속도가 10배나 빠른 IR-6를 가동 중이다. 미국이 지난해 일방적으로 핵합의에서 탈퇴한 뒤 이란 제재를 복원하자 이란은 지난 7월부터 대놓고 핵합의 조항을 위반하며 핵 생산 능력을 과시해왔다.
양국의 적대 관계가 본격화된 미 대사관 점거 사건은 반미 성향의 이란 대학생들의 분노에서 촉발됐다. 당시 강경파 대학생들은 미국이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를 비호하고 이란 내정에 계속 개입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미 대사관 담을 넘어 공관을 점거했다. 이후 444일 동안 외교관과 직원 등 미국인 52명이 인질로 억류됐다. 미국은 사건 이듬해인 1980년 이란과 단교하고 경제제재를 시작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