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의 13개 대학 학생부종합전형(학종) 실태조사에선 사실상 ‘고교등급제’ 시행이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일반고 내신 1등급을 외고나 국제고 3등급 수준으로 취급하는 사례가 확인됐다. 대학이 평가하는 고교 내신등급의 가치는 ‘과학고→외고·국제고→자사고→일반고’ 순으로 고교 서열체제와 일치했다.
교육부는 5일 학종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고교등급제 의심 사례 두 건을 공개했다. 고교등급제는 대학이 내부적으로 고교별 등급을 정하고 입학사정시 가점이나 감점을 하는 행위다. 교육부는 학생 개인의 능력이 아닌 고교의 ‘후광 효과’를 반영하는 고교등급제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교육부가 공개한 A대학 사례를 보면 이 대학에 지원한 일반고 학생의 평균 내신등급은 1.98이었다. 평균 내신등급은 과목별 내신 등급에 학생이 이수한 과목으로 나눠 산출한다. 자사고는 3.44, 외고·국제고는 3.62였다. 합격자들의 평균 내신등급은 일반고 1.30, 자사고 2.26, 외고·국제고 2.86이었다. 즉 일반고는 1등급 초반대, 외고·국제고는 3등급보다 약간 높은 내신 등급 학생들이 합격했다는 얘기다. 이 학교 고교유형별 합격률은 외고·국제고 19.5%, 자사고 5.7%, 일반고 4.3%였다.
B대학도 비슷한 경향을 나타냈다. 일반고 출신으로 B대학에 합격한 수험생의 평균 내신등급은 1.5였다. 자사고는 2.6, 외고·국제고는 2.86이었다. A대학에 비해 일반고와 외고·국제고 내신 격차가 많지는 않았으나 외고·국제고, 자사고, 일반고 순서는 달라지지 않았다. 이 대학의 고교유형별 합격률은 외고·국제고 23.1%, 자사고 10.8%, 일반고 9.3%였다.
교육부는 “이러한 고교유형별 서열화된 평균 내신등급 순서는 지원 단계부터 최종등록까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동일하게 유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백범 교육부 차관은 “이번 실태조사로 고교서열은 명확하게 나타났다. 또 서열이 고착화했다는 증거도 드러났다”고 말했다. 다만 교육부는 이런 고교서열이 고교등급제에 따른 결과인지 정상적인 평가에 따른 결과인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고교 프로파일’(공통고교정보)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고교에서는 공인어학시험 수상자 명단을 고교 프로파일에 넣거나, 서울 주요대학 합격자 수 등을 넣기도 했다. 우수한 학생이 모인 명문 학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꼼수’다. 교육부는 “고교 프로파일 및 평가시스템 등을 통해 고교유형별 차이가 불공정하게 반영될 수 있는 사례나 시스템이 일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실태조사 결과,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공통양식을 제시하고 있음에도 고교 프로파일이 학교별로 크게 차이가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양적으로만 봐도 어떤 학교의 프로파일은 수십장에 불과했는데, 양이 많은 고교의 프로파일은 무려 800여장에 달했다.
실태조사 대상 중 5개 대학은 이런 정보를 활용해 특정고교 이름을 입력하면 ‘원클릭’으로 해당 고교 졸업생이 대학에서 어떤 성적을 거두고 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원클릭 시스템을 가진 5개 대학의 지원자 1명당 평균 서류 평가 시간을 보니 가장 시간이 짧은 대학은 평균 8.66분에 불과했다. 서류 평가 시간이 가장 긴 대학도 평균 21.23분으로 나타났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