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종 편법 창구된 ‘고교프로파일’…자소서·추천서도 꼼수 난무

입력 2019-11-05 17:47

고등학교들이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위해 대학에 제출하는 ‘고교 프로파일(공통고교정보)’이 어학성적·소논문 등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가 금지된 이른바 ‘스펙’을 제출하는 창구로 활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5일 교육부의 13개 대학 학종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 외고는 텝스(TEPS) 등 공인어학시험 성적으로 학생에게 교내 상을 준 뒤 수상자 명단을 고교 프로파일에 명시했다. 다른 일반고는 모의고사 성적과 교과과정별 내신성적 분포 자료를 프로파일에 첨부했다. 또다른 학교는 대학 교수와 연구 및 소논문 작성(R&E) 활동을 하고는 참여한 학생 명단을 프로파일에 첨부했다.

어학시험과 모의고사 성적, 논문 작성 여부 등은 학종에서 학생부나 자기소개서에 쓸 수가 없지만, 각 대학들은 이런 고교 프로파일을 통해 학생의 구체적인 수상실적 등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교육부 실태조사단 관계자는 “고교 프로파일이 이렇게까지 가 있는 것은 우리도 처음 봤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전국 고교 2216곳 가운데 37.9%인 840곳이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이런 고교 프로파일을 제출하면서 대교협이 요구하는 필수정보 외에 추가 자료를 입력했다.

고교 프로파일이란 각 고등학교가 대입을 위해 정리하는 학교 자기소개서다. 주로 학교 위치·규모, 교육 목표, 교육과정 특징, 동아리 및 교내 시상 현황 등을 담지만 많은 고교가 소위 학생들의 스펙을 구체적으로 적어넣은 편법을 사용한 것이다.

대학들도 고교 프로파일을 적극 활용했다. 한 대학이 자체 시스템에 ‘A고’를입력하면 이 학교 출신 재학생이 몇 명인지, 이 학생들의 평균 학점은 몇점인지 확인할 수 있다. 다른 대학은 지원자의 내신등급을 같은 고교 또는 같은 학교 유형 출신 재학생들의 과거 내신과 비교할 수 있는 시스템도 갖고 있었다.

자기소개서와 교사추천서에서도 편법이 난무했다. 자기소개서에는 학교 외부 경시대회 수상실적을 적을 수 없다. 그런데 한 학생은 자기소개서에 “한국청소년과학올림피아드에서 우수한 결과를 거뒀다”고 썼다. ‘상을 받았다’는 표현만 피한 것이다. 다른 학생은 “창업진흥원장상을 시작으로, 중소기업청장상 표창과 한국발명진흥회장상을 받았다”고 썼다. 수학·과학·외국어 등 교과 관련 수상실적만 기재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교묘히 회피한 셈이다.

자기소개서 표절도 적발됐다. 대교협 검증시스템에서 유사도가 5∼30%인 B수준 표절이 205건이었고 유사도가 30%를 넘는 C수준 표절은 23건이었다.

하지만 각 대학은 자기소개서·교사추천서·학교생활부 기재금지 위반과 표절이 적발돼도 엄정하게 대처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학교생활부의 경우 13개 대학 모두 기재금지 사항 검증시스템이 없었고, 기재금지 사항을 위반해도 별도로 불이익을 받은 사례도 전무했다. 학생부 기재 주체는 교사로, 교사의 잘못으로 학생의 평가에 불이익을 주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2019학년도 자기소개서·추천서 기재금지 적발 현황을 보면, 총 적발건수 366건 중 서류평가 0점 및 부적격 처리는 77건(21.0%)에 그쳤다. 반면 아무런 불이익을 주지 않은 것은 230건(62.8%)이나 됐다. 한 대학은 자기소개서를 표절한 지원자에게 불이익을 주지 않았다. 대신 평가자에게 표절 사실을 알려주는데 그쳤다. 이 대학에선 2016∼2018년 8명이 표절 자소서로 합격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