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 모티브 케이크, 중국 네티즌 반발에 실격 논란

입력 2019-11-05 16:22

홍콩의 한 제빵사가 홍콩 민주화 시위에서 모티브를 딴 케이크를 만들어 국제 대회에 출품했다가 중국 본토 네티즌들의 격렬한 반발을 사는 일이 빚어졌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5일 보도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란 대회 주최 측이 해당 케이크가 ‘공격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실격 처리하자 이번에는 홍콩 시위 지지자들이 항의에 나섰다.

SCMP에 따르면 홍콩 셩완 지역의 카페에 근무하는 익명의 제빵사는 영국 버밍엄에서 열린 국제 대회 ‘케이크 인터내셔널’에 홍콩 시위를 주제로 한 케이크를 출품했다. 노란 헬멧과 검은 셔츠 차림의 시위대, 홍콩 시위대가 즐겨 착용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 “홍콩을 위한 기도” “시대 혁명” 등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문구 등으로 장식된 사각형 모양 케이크였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중국 본토 네티즌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주최 측에 해당 케이크를 실격 처리하라고 요구했다. 중국 저장성에 사는 한 여성은 지난 1일 웨이보에 올린 동영상에서 “우리는 자발적으로 나서 주최 측에 이 작품을 실격토록 요구했다”며 “요구가 받아들여지든 말든 관계없이 우리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국익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주최 측의 반응은 신속했다. 주최 측은 지난 2일 제빵사에게 이메일을 보내 “케이크에 들어 있는 내용과 메시지가 공격적으로 비춰질 수 있어 참석자들의 항의를 유발할 우려가 있다”며 “이에 따라 해당 작품을 경쟁에서 탈락토록 결정했다”고 밝혔다. 제빵사와 같은 카페에서 일하는 동료는 SCMP에 “영국 주최 측이 이렇게 쉽게 포기할 줄은 몰랐다”며 “행사에는 사회 문제나 심지어 정치를 다루는 다양한 작품이 전 세계에서 출품됐었다”고 말했다.

주최 측이 일반에 공개한 낙선 사유가 제빵사에게 보낸 이메일과 다르다는 논란도 불거졌다. 주최 측은 페이스북 계정에서 “해당 작품이 낙선한 건 정치적 이유 때문이 아니다”며 “규정 치수에 맞지 않아 다른 경쟁 작품과 나란히 정렬될 수 없어 부득이 실격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제빵사 본인에게는 작품이 ‘공격적’이라는 이유로 실격 처리했다고 해놓고는 일반 대중에게는 다른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홍콩 시민들과 홍콩 시위 지지자들은 중국의 압력에 굴복해 케이크를 실격 처리한 게 분명하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한 시민은 “케이크가 공격당할 우려가 있다면 그런 사람의 입장을 막으면 될 일이지 케이크를 실격할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주최 측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 항의 댓글 수천 개 달았다. ‘케이크 인터내셔널’ 로고의 알파벳 ‘C’에 중국의 영문명 ‘CHINA’를 합성한 그림도 만들어졌다. 다른 홍콩 시민들은 주최 측의 실격 결정이 도리어 케이크를 더욱 유명하게 만들어줬다고 비꼬았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