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정상환담… 日정부는 의미축소, 日언론은 “보여주기” 폄훼

입력 2019-11-05 15:09
문재인 대통령이 4일 오전(현지시간)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제22차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아베 신조(왼쪽 두번째) 일본 총리와 사전환담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일본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의 즉석 제안으로 이뤄진 한·일 정상 간 만남에 대해 “우리(일본)의 원칙적인 입장을 확실히 전달했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한국 측이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보여주기’식 대화를 한 것이라고 폄훼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5일 정례브리핑에서 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이 전날 태국 방콕에서 만나 약 11분간 짧은 대화를 나눈 것에 대해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본의 원칙적인 입장을 제대로 전달했다”며 “한국 측에 현명한 대응을 요구해 갈 생각에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아베 총리가 대기실에 들어가 각국 정상과 악수를 하는 중 문 대통령과도 악수를 해 자연스러운 흐름에서 비어있던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눴다”고도 말했다. 양국 정상의 대화가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이뤄졌을 뿐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의 ‘고위급 협의’ 제안에 대해서는 “그간 얘기했듯 외교 당국 간 협의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자는 취지로 응대했다”며 사실상 거절하는 듯한 뜻을 내비쳤다. 양국 정부의 관련 발표 내용이 다소 차이가 있다는 물음에는 “한국 측의 발표에 대해서는 한국 측에 물어라”라며 답변을 거절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외무상도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일 정상 간 대화를 두고 “10분 간 말을 주고받은 것으로 커다란 평가를 하는 것은 어렵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고위급 협의에 대해서는 “(협의의) 수준의 문제보다 내용이 중요하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측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일본 아사히신문은 전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도 한·일 정상 간 만남의 의미를 축소했다. 문 대통령이 국내 정치적으로 어려운 상황인데다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GSOMIA) 종료 선언으로 미국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자 ‘대화하려는 자세’를 보여주려 했다는 주장이다.

요미우리는 이날 청와대가 이번 만남은 ‘환담’으로 표현한 것에 대해 “대화 성과를 강조한 것은 미국을 의식한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라며 “미국이 지소미아를 유지를 요구하고 있어 일본과의 대화 자세를 미국에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문 대통령이 환담에서 대화를 강조한 것은 지소미아 종료를 앞두고 한·일이 대화가 가능한 관계라는 것을 미국에 보여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사히는 “한국 측이 이날 호의적인 분위기를 강조한 배경에는 대통령 임기 5년의 반환점을 맞아 내정도 외교도 곤란한 상황에 맞닥뜨린 측면이 있다”며 “내년 4월 총선 전에 일·한 관계에서 성과를 내는 것에 쫓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징용공 소송에서 문 대통령도 쉽게 양보할 수 없어서 관계 개선의 길은 먼 실정이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일본 측은 이번 만남에 소극적이었다는 것도 강조했다. 또 다른 일본 관료는 “아베 총리가 도망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문 대통령의 대화(환담) 요청을 받아들였다”며 “(환담에서) 징용 문제와 관련해 새로운 제안이 없었으니 상황이 움직이지 있지 않고 있다”고 요미우리에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