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탄소배출 美, ‘파리기후협약’ 공식 탈퇴… 기후재앙 위기

입력 2019-11-05 10:11
환경단체 '멸종저항' 회원들이 지난달 7일 미국 뉴욕에서 정부의 기후위기 대처를 적극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 공식 탈퇴 절차에 돌입했다.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두 번째로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하면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재앙 위험도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4일(현시지간) 성명에서 “오늘 미국은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기 위한 절차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협약 규정에 따라 미국은 공식 탈퇴 통보를 유엔에 전달했다”며 “탈퇴는 통보로부터 1년이 지나 효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폼페이오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노동자와 기업, 납세자에게 전가되는 불공정한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파리협약을 탈퇴하기로 결정했다”며 미국은 경제성장과 환경보호 모두에 힘썼다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의 건강과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미국의 대기 오염물질 배출량은 1970년부터 2018년 사이 74% 줄었고, 미국의 최종 온실가스 배출량도 2005년부터 2017년 사이 미국 경제가 19% 성장했는데도 13% 줄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국제사회의 기후 논의에 실제 결과를 기록으로 뒷받침하는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모델을 계속 제공할 것”이라며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인한 회복 탄력성을 증대하고 자연재해에 대비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와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파리협약은 2020년 만료 예정인 교토의정서를 대체해 이후의 기후변화 대응을 담은 국제협약이다. 교토의정서가 선진국에만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부여했다면, 파리협약은 189개국 당사국 모두에 구속력을 가진다. 지구온난화를 억제하기 위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2℃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고 1.5℃ 이하로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 또 5년마다 상향된 감축목표 제출하고 이행 여부를 검증한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파리협약을 주도하며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수준에서 26~28%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직후 미국이 환경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파리협약이 경제에 악영향을 끼친다며 파리협약 탈퇴를 선언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인 중국이나 인도(3위) 등 개도국에 비해 미국이 가혹한 규제를 받는다는 입장이다. 실제 파리협약은 구속력 있는 감축 의무는 부과되지 않아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돼왔다. 하지만 개도국들은 선진국이 이미 산업화를 겪으며 온실가스 등을 배출해온 상황에서, 선진국과 개도국에게 같은 의무를 부과한다면 개도국은 성장에 차질을 빚는다고 맞서왔다. 이 때문에 파리협약은 선진국과 개도국에 모두 감축 의무를 부과하되, 다른 목표치를 제출하도록 했다.

미국이 파리협약에서 탈퇴하게 되면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재앙은 더 앞당겨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중국·인도의 온실감축 이행 의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CNN은 “미국의 탈퇴는 전세계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한다”며 “기후변화의 해로운 영향이 더욱 명백해지는데도 미국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라고 전했다.

미국을 향한 국제적인 신뢰도도 낮아진다는 비판도 있다. 오바마 정부에서 파리협정 협상을 도운 앤드류 라이트 세계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가장 필요한 시기에 우리의 신뢰도는 정말 사상 최저 수준”이라고 CNN에 말했다.

미국이 파리협약 탈퇴로 경제적 기회를 놓친다는 분석도 있다. 세계은행그룹 국제금융공사의 2016년 보고서에 따르면 파리협약의 목표는 2030년까지 약 23조달러의 개발도상국 투자기회를 열 것으로 추산된다. 파리협약 지지자들은 미국이 시장에서 손을 떼자 주요 경쟁국들이 개입하고 있다고 미국 CNN방송은 전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