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하인두, 한국 추상미술의 큰 자취’ 발간

입력 2019-11-05 11:00

전쟁 후 상실의 시대, 한국 화단에 추상미술을 들여놓았던 사람이 있다. 한국 추상미술의 큰 자취, 화가 하인두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1930년 8월 태어나 1989년 11월 세상을 떠난 화가 하인두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조망한 책 『화가 하인두, 한국 추상미술의 큰 자취』(김경연, 신수경 공저)가 출간됐다.

미술사 전공자 두 사람이 약 6년여에 걸쳐 집성한 한 사람의 일대기다. 한국 현대미술사의 의미 있는 기록의 탄생된 것이다.

화가 하인두는 해방 후 일제강점기 이후 새로운 역사를 쓰기 시작한 한국 화단의 출발점부터 본격적인 추상 미술의 세계로 진입하는 모든 순간에 상수(常數)와도 같은 존재다.

해방 후 제1세대 작가군에 속하는 그는 1956년 새로운 미술 운동의 기치를 내건 ‘청맥’ 동인을 결성하고,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의 창립에 참여한 이래 추상미술이 한국미술사에 큰 줄기를 형성하는 전 과정에 함께 있었다.

해방 이후 그를 포함한 제1세대 예술가들의 등장 이전까지 한국 화단은 매우 보수적인 성향을 유지해왔다. 국전에서 이름을 올리는 것이야말로 화가로서 인정 받는 거의 유일한 진입로로 여겨지던 시절, 당대 젊은 예술가들은 이런 국전 중심의 보수적이고 구태의연한 경향에 전복적인 입장을 취함과 동시에 새로운 화풍의 구상과 경향성 획득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나갔다.

이러한 시도는 유럽에서 유입된 앵포르멜 운동으로 표면화되기 시작, 이후 이전에 볼 수 없던 실험적인 미술 활동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추상미술은 한국미술사의 큰 줄기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고 나아가 한국적인 추상화를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었다.

세상은 그를 향해 ‘한국적 앵포르멜의 좌표’, ‘단색화 위주의 한국 화단에서 색채를 불어넣은 화가’로 부른다

화가 하인두의 예술 세계가 갖는 의미는 단지 유럽에서 유입된 화풍을 한국에 접목시킨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보수적인 기존 화단의 경향성에 대해 가장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방식으로 전복을 꿈꿨다. 당시로서는 매우 실험적인 시도를 다양하게 추구했으나 화단의 주류에 동참하지는 않았다. 한국 화단 내에서 그는 대체로 늘 외로운 외길을 걸었다. 화가로서 그는 집요한 자기 성찰, 자신의 작품에 대한 강박에 가까운 완벽함을 요구하는 면모를 가졌다. 그에게 독창성은 예술 세계 전반의 화두였다. 국가보안법 불고지죄로 공민권을 박탈당한 이래 한국 땅에 거의 갇혀 있다시피 했던 그가 마침내 떠난 세계무대에서 그가 추구한 것 역시 바로 독창성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단색화 위주의 한국 화단에서 과감한 색채 표현을 통해 자신만의 추상 회화, 색채 표현을 끝까지 추구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재료는 서양의 것을 취했으나 자신의 작품에 내재한 근본 정신은 우리의 전통에서 찾았다. 그가 구현하는 추상미술의 핵심에는 불교의 원리가 늘 자리잡고 있었고, 작품의 주요한 특징으로 꼽히는 원색의 색채는 전통적인 오방색을 비롯해 전통에 대한 깊은 사유에서 비롯한 것이다.

그가 추구하고 펼쳐낸 예술 세계는 한국적 앵포르멜의 시도가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에 대해 명확한 좌표가 되었으며, 그런 그가 동년배의 여러 화가에 비해 일찍 세상을 떠난 점은 애석한 일이나, 그가 남긴 의미와 자취는 그 자체로 주목할 만하다.

화가 하인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됐다. 한국 현대 화단의 역사에 끊임없이 소환되는 이름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선봉에 서 있던 화가 하인두가 1989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지 어느덧 30년이 지났다. 한 사람의 존재가 망각의 세계로 사라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는 잊혀지지 않았고, 역사가 되었다. 오래전 그는 떠났으나 그는 여전히 한국 현대 화단에서 현재진행형이다.

이 책에 실린 ‘주요 연보’에는 살아생전의 흔적은 물론, 그가 떠난 뒤 약 30여 년 동안 이 세상이 그를 줄곧 소환한 기록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도 꾸준히 국내외 곳곳에서 전시를 이어왔듯, 그가 남긴 그림은 거의 한 해도 빠지지 않고 대한민국 어느 곳에서 세상과 꾸준히 조우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의 작품과 예술 세계 역시 근현대미술사를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줄곧 소환되었다. 그의 예술 세계를 대상으로 삼은 논문이 발표되고, 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는 화가로서만 소환되지 않았다. 하인두는 매우 드물게 자신의 생각을 그림만이 아닌 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그가 그림만큼이나 숱하게 남긴 그의 기록은 후대에도 여전하고 꾸준하게 다양한 방식으로 인용, 연구되었다.

오래전 세상을 떠난 누군가를 떠올리는 방식은 대부분 그와 함께 일정한 시절을 보낸 누군가의 개인적 추억과 회고의 범주 안에 머물곤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개인의 삶을 기록하되 감상적인 추억의 일별 또는 그가 이룩한 예술 세계를 향한 찬사의 나열이라는 전형성을 성큼 뛰어넘는다. 이 책은 화가 하인두의 개인적 삶을 반추하는 것에서 나아가 한 사람의 화가가 걸어온 개인의 역사가 어떻게 한국 현대화단의 초창기 역사와 맞물려 커다란 변곡점을 만들어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이 그런 의미를 부여 받을 수 있는 것은 온전히 저자들의 고군분투 덕분이다. 우연한 기회에 화가 하인두의 삶을 자신들의 연구 텍스트로 받아들인 김경연, 신수경 두 사람은 2013년부터 화가 하인두가 남긴 모든 기록과 관련 자료를 섭렵했고, 하인두를 둘러싼 숱한 인물들과 만나 그들이 기억하는 하인두와 그 시절을 되살려냈다. 두 사람은 약 6년여에 걸쳐 축적한 기록과 집성한 자료들을 한 권의 책으로 구현하면서 일차적으로는 한 개인의 삶과 화가로서의 이력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

이 책이 빛을 발하는 지점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는 데 있다. 화가 하인두의 생애와 예술 세계를 저본으로 삼아 김경연, 신수경은 우리 미술사에서 화가 하인두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씨줄로, 그라는 존재로 인해 우리 한국 화단이 어떤 경로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날줄로 교직해냈다. 이로써 독자들은 한 사람의 예술가가 살아온 삶을 통해 한국 화단의 오늘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를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한국의 현대미술은 한 시절의 역사, 또는 연구자들끼리만 알고 있던 그 시절 낱낱의 풍경을 대중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매우 유의미한 기록이 화가 하인두를 통해 이렇게 탄생한 셈이다.

본문 속에서

하인두, 그가 추구한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혼잣말이다. 현대의 회화, 소설 또는 평론에서 말끔히 사라지고 만 것이 이 독어성獨語性, 모놀로그monologue의 정신이 아닐까. ‘모놀로그의 정신’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나’의 드러냄이며 발가벗은 채 아무것도 가리지 않은 ‘자기 고백’, 그것이다.”_15쪽

“막연한 전위前衛나 실험이 아니라,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것, 즉 한국 냄새가 짙은 작품을 해야겠다. 재료는 서양의 것을 쓰더라도 내용은 한국의 전통을 여과한 참멋을 담아야겠다.”_233쪽

“무국적無國籍 예술은 부평초浮萍草와 같은 것.
언젠가는 물결 따라 바람 따라 자취를 감춰버리고 마는 것!”_277쪽

“예술에서 구체적인 설명은 기술技術을 낳게 하고, 추상적 상징에서 보다 심오한 미美의 경지境地가 열린다.”_315쪽

“어쩌면 죽음이 임박해 있는 것도 같고, 또 어쩌면 멀찌감치 비켜 앉아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도 같은 이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한 가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죽음의 입김이 언제나 내 코앞에 다가와 있는 한 나는 잠시라도 내 일을 멈출 수가 없고, 또한 소홀히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늘 이것이 마지막 절대 절명의 순간임을 절감하며, 살아서는 내 혼(魂)불을 끝까지 태워버리자는 것이다.”_331쪽

“‘전통’ 하면 무조건 옛 것을 이어받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통념과 달리 하인두는 내재되어 있는 힘을 끌어내고, 우수한 외래문화를 잘 소화하여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전통이라고 정의했다.”_276~277쪽

“하인두가 색채화가로서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화단의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이 해왔던 방법을 발전시켜나갔기에 가능했다. 거기에 더해 폭넓은 독서와 사유, 동서양 미술을 자신의 양식에 맞게 종합한 결과였다.
동료작가들이 종이의 질감에 천착하여 모노크롬으로 일관할 때 하인두는 질감보다는 화면구성과 색채를 통한 정신의 표현해 몰두했다.”_325쪽

하인두, 그의 이름을 부르면 함께 떠오르는 그 시대 한국 화단의 풍경

#먼 나라의 예술 세계를 동경했던 화가들, 화가들의 전시장, 다방
“전쟁이 장기화되고 피난민으로 가득찬 한반도의 한 귀퉁이에서도 서양 모더니즘은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한반도 너머 유럽미술, 국제미술을 동경하는 마음이 강렬해질수록 화가들은 자조와 비통에 잠기곤 했다.”_73쪽

“마땅한 전시공간이 없어 피난지 임시 수도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다방과 요릿집을 빌려 개최된 전시회장에 들어서면 우선 신을 벗어야 했다. 다다미의 감촉을 발아래 느끼며 그림들을 감상하노라면 ‘아아, 전람회도 피난 왔구나’하는 회한이 문득 들곤 했다.’”_73쪽.

#국전의 보수성에 전복을 시도했던, 반동의 예술가
“국전에서의 입상은 화단의 장원급제요,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때문에 국전이 열릴 때마다 편파적인 심사와 인맥, 학맥으로 얽힌 운영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비판이 점차 세차게 퍼져나갔다. 하인두는 이렇듯 기성 미술계에 대한 부정, 구태의연한 국전 아카데미의 전복에 동조하며 20세기 모더니즘에서도 가장 과격한 성격을 보였던 미래주의를 직접 시도해본 것은 아니었을까?”_108쪽

#하인두와 작가들, 도라지 다방에서 한국현대미술의 변혁을 꿈꾸다
“나라 전체를 통틀어 미술인구 150명, 화가는 100명이 채 못 되던 시절이었다. 대부분의 화가들은 어느 집단에든 속하면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 속에서 그나마 외로움을 달래며 서로를 격려하던 때였다. 집단마다 보이지 않는 판도가 있었다. (중략) 하인두가 들락거리던 도라지 다방은 박서보 화실과 가까웠다. 이 다방에 1958년경부터 1964년까지 한국현대미술의 변혁을 꿈꾸던 작가들이 모여들었고, 하인두는 이 시절을 ‘안국동 시대’라고 일컬었다._118쪽

#앵포르멜과 맞닥뜨린 한국의 예술가들
“앵포르멜은 어느덧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고 있었다. (중략) 어쩌면 앵포르멜이야말로 그를 괴롭히는 끝모를 허무와 절망감, 극도의 불안감이 이렇듯 미친듯이 어지럽게 날뛰는 화면 속에서 오히려 더 적절하게 표현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그를 잡아끌었는지도 모른다.”_127~129쪽

#기성화단에 도전하던 젊은 예술가들, 미술계의 세력으로 성장하다
“일찍이 국전 중심의 기성화단에 도전해온 박서보와 추상작가들은 어느새 국전과 구상미술에 버금가는 세력으로 성장하였고, (중략) 국전이 구상 부분과 비구상(추상) 부분으로 나뉘어야 한다는 이들의 오랜 주장이 드디어 수용된 것이다.”_207쪽

#한국의 화가들, 세계 미술계와 교신하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미국의 막대한 경제원조와 더불어 다양한 문화적 지원 정책으로 미국 문화가 급속도로 유입되었다. (중략) 하지만 하인두는 미국이 아닌 프랑스를 선택했다. (중략) 프랑스와 한국 사이의 미술 교류는 1968년 한불문화협정의 체결을 기점으로 본격화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프랑스를 미술의 중심지로 여겼던 남관과 같은 작가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미술 교류가 전개되고 있었다.”250~251쪽

#서양의 방식을 취했으나 그 안에 전통을 담다
“하인두는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서 보았던 민속놀이와 박생광 작품을 오버랩하며 한국의 색깔, 전통적인 문양을 떠올렸던 것으로 보인다. (중략) <역동의 빛> 연작에서는 태극 문양을 연상시키는 원과 색채를 조형 요소로 삼았다.”_312쪽


지은이 소개

김경연, 신수경
한국근현대미술사를 전공한 두 사람은 홍익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명지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그동안 『한국의 미술가』 시리즈 편집,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원로작가구술채록사업 채록연구원, 『장욱진』공동 집필 등 여러 작업을 같이 해왔다. 이 책은 두 사람이 2013년경부터 하인두의 생애와 예술세계를 함께 탐구해온 공동의 결과물이다.

김경연은 「하인두 초기 작품세계 연구」와 「안상철 작품연구」, 「1950년대 한국화의 수묵추상경향에 대하여」, 「1970년대 한국동양화 추상연구」, 「‘한국화’에서 ‘한국의 회화’로- 1990년대 이후 한국화」, 「보편회화 지향의 역사-20세기 전반기 동양화 개념의 변모」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이동훈 평전』이 있다.

신수경은 김용준⋅김주경⋅이쾌대⋅정종여⋅정현웅 등 월북미술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며 「해방기(1945~1948) 월북미술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중섭의 표지화와 삽화: 문학과 예술의 만남」, 「북한의 역사인물 초상화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한국근대미술의 천재화가 이인성』, 『시대와 예술의 경계인, 정현웅』(공저) 등이 있다. 지금은 문화재청 평택항 문화재감정관실의 감정위원으로 있다.

정창교 기자 jcgy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