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감 놀이…청소하고 올게” 고유정 통화에 담긴 소름 끼치는 말

입력 2019-11-05 06:40 수정 2019-11-05 14:33

전 남편 살해 혐의로 구속기소 된 고유정(36)이 범행 직후 펜션 주인과 웃으며 전화 통화 한 음성이 법정에서 공개됐다. 시종일관 상냥한 목소리로 통화한 고유정은 “물감 놀이했다” “청소하고 오겠다” 등의 말로 범행을 에둘러 표현해 방청석을 경악시켰다. 울분이 터진 유족들은 살인마 고유정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4일 제주지법 형사 2주(재판장 정봉기) 심리로 열린 고유정의 6차 공판에서 검찰은 범행 일주일 전과 당일 고유정이 펜션 주인과 통화한 음성을 공개했다. 범행 당일 고유정과 펜션 주인이 전화 통화한 것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오후 8시10분부터 9시50분 전후로 모두 세 건이다. 고유정은 8시43분 펜션 주인과의 첫 통화에서 “잘 들어왔다. 감사하다”면서 “애를 봐야 해서 조금만 있다가 전화드리겠다”며 끊었다.

이후 걸려온 전화는 고유정의 아들이 전화를 받는 바람에 1분 만에 통화가 끊겼다. 오후 9시50분쯤 세 번째 통화에서도 고유정의 아들이 먼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늦게 받은 이유에 대해 고유정은 펜션 주인에게 “물감 놀이를 하고 왔다”고 둘러댔다. 이는 흉기 살해를 ‘물감 놀이’라고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들에게 전화를 건네 받은 고유정은 펜션 주인과 통화하기 전 아들에게 “먼저 자고 있어요. 엄마 청소하고 올게요”라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고유정이 살해한 전 남편을 이미 살해한 뒤 욕실로 옮겨 흔적을 지우고 있었던 때로 보고 있다. 검사는 “성폭행당할 뻔했던 피고인이 이렇게 태연하게 전화통화를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며 “범행 당일 펜션에서 최소 15회 이상 피해자를 칼로 찌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우발적 범행이라는 고유정측 주장을 반박했다.

펜션을 예약할 당시 고유정과 펜션 주인의 통화 음성도 공개됐다. 범행이 있기 약 일주일 전인 5월17일 펜션 주인과의 통화에서 고유정은 “사장님, 펜션은 우리 가족만 쓸 수 있는 거죠? 주인분이나 사장님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니죠?”라며 재차 물었다. 아이가 몇 살이냐는 질문에 고유정은 “남편이랑 저랑 아기랑 갈 거다. 아기는 지금 여섯 살이다”라고 답했다.

이 같은 음성이 법정 안에서 울려 퍼지자 방청석에선 탄식이 쏟아졌다. 검찰 측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피해자의 동생과 어머니는 울분을 터뜨렸다. 동생은 형의 이혼 소송 서류를 손에 들고 “온통 거짓으로 쓰인 소장에서조차 변태, 혹은 성과 관련된 단어는 하나도 없었다”며 “형님이 성폭행하거나 위력을 행사했다는 것은 모두 거짓”이라고 반박했다.

동생은 또 “형님을 살해한 장본인이 이제는 형님의 명예까지 가져가려는 데 경악했다”며 “내가 법정에서 처음으로 소리를 질렀는데 고유정은 웃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동생은 “저희 형님은 변태성욕자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지난 9월 30일 공판에서 전 남편의 성폭행 시도를 막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고유정의 주장을 반박했다.

증인석에 선 피해자 어머니도 울먹이며 “내 아들을 죽인 저 살인마와 한 공간에 있다는 게 참담하고 가슴이 끊어질 듯 아프다”면서 “지금까지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식을 먼저 앞세우고 시신조차 못 찾은 상태에서 장례를 치른 부모의 애끓는 마음은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한 어머니는 “내 아들의 시신 일부조차 찾지 못하게 입을 다물면서도 본인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저 모습이 너무나 가증스럽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내가 그날 내 아들을 지켜주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우리 아들을 편히 쉴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한 어머니는 “너무나도 원통하고 분하다. 반드시 극형을 내려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어머니의 진술이 이어지자 방청객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고유정은 유족들의 증언이 진행되는 동안 고개를 숙인 채 들지 않았다. 검찰은 이날 6세 아들이 아버지를 삼촌이라고 지칭하며 ‘카레는 삼촌과 내가 먹었고 엄마는 안 먹었다’고 답했다며 계획된 살인이라고 주장했다. 고유정의 전남편 살해사건에 대한 결심 공판은 오는 18일 오후 2시 제주지법에서 열린다.

한편 고유정은 지난 5월25일 제주로 내려가 전 남편 강모(36)씨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6월1일 청주의 자택에서 긴급체포 됐다. 지난달 청주지검으로부터 고씨의 의붓아들 사망 사건을 넘겨받아 추가 수시를 진행 중인 제주지검은 이르면 이번 주 내로 고씨를 기소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