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도날드, 인텔, 워너… 미투에 달라진 美기업들 “성추문=퇴출”

입력 2019-11-04 17:17 수정 2019-11-04 18:22
세계 최대 햄버거 체인 '맥도날드' 매장. 연합뉴스

미국에 본사를 둔 세계적 기업들이 경영진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단호해지고 있다. 부하 직원과 사적 관계 금지를 규정한 사규 적용이라는 제도 영향이다. 이는 크게 보면 2017년 성폭행 및 성희롱을 공개적으로 고발하면서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MeToo·나도 당했다)’의 광범위한 확산이라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있다.

세계 최대 패스트푸드 체인 맥도날드는 3일(현지시간) “스티브 이스터브룩 최고경영자(CEO)가 회사 방침을 위반해 직원과 합의된 관계를 가진 사실을 조사했다”며 해임을 공식 발표했다. 맥도날드는 어떤 관계인지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았다. 이스터브룩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실수였다”며 “이사회 결정에 동의했다”고 말했다.

이혼 후 현재 싱글인 이스터브룩은 2015년 3월 맥도날드 CEO로 취임했고 재임 기간 맥도날드 주가가 2배 가까이 상승하는 등 성과를 내 2017년에는 2180만달러(254억원)의 보수를 받을 정도로 성과를 인정받은 CEO였다. 그의 해임에 따라 크리스 켐프친스키 맥도날드 미국법인 사장이 CEO와 이사회 의장을 새로 맡았다.

맥도날드 이사회는 엄청난 성과를 낸 능력 있는 CEO를 왜 내보내야 했을까. 그 이유는 그가 부하직원과 ‘사적인 관계(consensual relationship)’를 맺었기 때문이다. 이스터브룩은 독신남이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부하직원과의 연애는 맥도날드 사내규정을 위반하는 것이다.

맥도날드는 최근 몇 년간 매장 직원에 대한 성희롱 문제에 대한 비판이 계속 제기됐다. 성희롱에 대해 항의하는 직원이 보복성 인사조처를 당한 사례도 보고됐다. 비판이 커지자 맥도날드는 지난 8월 2000여개 매장을 대상으로 안전한 직장 만들기 교육 강화 방침까지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CEO와 부하직원의 사적인 관계가 드러난 것이다.

AP통신은 “2년 전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기업이 성희롱이나 사내연애에 대해 더욱 엄격해졌다”면서 “특히 상사가 부하직원과 연인 관계를 맺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보도했다. ABC뉴스도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물 위로 끌어올린 미투 운동으로 회사 경영진에 관한 규정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고 미국 내 분위기를 전했다.

미투 운동은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틴의 성추문을 폭로하고 비난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에 해시태그(#MeToo)를 다는 것으로 널리 퍼졌다. 이후 직장 및 사업체 내의 성폭행 및 성희롱을 SNS를 통해 입증하며 보편화됐다. 미투 운동 후 미국 내 본사를 둔 세계적 기업들이 성추문을 일으킨 경영진을 업계에서 퇴출되고 있다.

아시아계 최초로 미국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수장에 올랐던 케빈 쓰지하라(54) 워너브러더스 회장 겸 CEO는 지난 3월 영화 출연을 미끼로 여배우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가졌다는 의혹 속에 전격 경질됐다. 미투 운동 이전이라면 서로 쉬쉬하는 분위기 속에 묻힐 수도 있었지만 할리우드는 더 이상 그런 루머를 허용하지 않았다.

세계 최대 반도체 기업 인텔 CEO였던 브라이언 크르자니크 역시 지난해 6월 부하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로 사임해야 했다. 크르자니크는 36년 동안이나 인텔에서 일하며 CEO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으나, 인텔은 관리자(Manager) 이상에 대해서는 내부 연애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사내규정(non-fraternization policy)이 있다. 인텔은 이 사실을 보도자료를 통해 밝혔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