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일본 언론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의 단독 환담을 보도하며 지난 7월 일본 정부의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단행한 뒤 양국 갈등이 수개월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뤄진 두 정상의 만남이 교착상태를 타개할지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이번 기회로 일본의 입장을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 외무성은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아베 총리는 아세안+3 정상회의가 열리기 전 정상대기실에서 문 대통령과 단 둘이 약 10분간 대화를 나눴다”며 “아베 총리가 문 대통령에게 (한·일) 양자 문제에 관한 우리나라(일본)의 원칙적 입장을 확고하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요미우리신문은 “징용공들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을 재차 설명하고 한국 측에 적절한 대응을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도 “(한국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을 명확하게 위반하고 한국 측에 시정을 요구하는 일본의 입장을 재차 전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태국 방콕에서 단독 환담을 가졌다. 지난해 9월 유엔총회 이후 13개월여 만이다. 일본 언론들은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 국가) 제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선언 등 한·일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이뤄진 정상 간 환담에 의미를 부여했다.
닛케이는 “일본 정부가 지난 7월에 반도체 재료 등 수출관리를 엄격화한 이후 두 정상이 만나는 것은 처음”이라며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와 9월 유엔 총회에서도 한·일 정상회담이 보류됐다”고 보도했다. 마이니치신문도 “징용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아베 총리와 문 대통령이 만났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은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전날 웃는 얼굴로 악수를 나눴다며 환담 이전에 대화 무드가 조성됐음을 시사했다.
23일 0시부터 만료되는 지소미아의 연장 여부와 관련해도 기대감을 내비쳤다. 아사히는 “이번 아세안 정상회의는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지소미아 만료 시한인 23일 0시전까지 만날 마지막 기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반면 양국 정상의 온도차를 강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산케이는 “문 대통령은 ‘필요하다면 보다 고위급 협의를 갖는 방법도 검토하자’고 했다”며 “반면 아베 총리는 ‘모든 가능한 방법을 통해 해결법을 찾도록 노력하자’고 응했다”고 전했다. 아사히는 “문 대통령이 아세안 각국 정상과 일·중·한 정상회담 직전에 회담을 촉구했다”며 “강제징용 소송 문제 등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한국 측은 아세안 정상회의에 맞춰 지난해 9월 이래 끊어진 정상회담을 열고 싶어 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최대 포털 야후재팬의 정치 저널리스트 아즈미 아키코는 “공식회담이 아니라 사적회담이지만 한·일 외교의 물밑 노력이 상당했을 것”이라면서도 “논의가 첫걸음이지만 양국 관계개선 여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대화의 문이 열린 것을 통해 주장을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며 “관계 개선 요구는 한국 국내에서 더 올라와있을 것이므로 절호의 기회”라고 주장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