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4억 예산 멋대로 사용…이유는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

입력 2019-11-04 15:29 수정 2019-11-04 15:52
법원행정처가 2017년 이뤄진 대법원장 공관 리모델링 사업을 위해 4억7000만원에 달하는 예산을 무단으로 이·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사업 예산은 애초 국회 심의과정에서 감액됐으나 행정처가 예산을 다른 곳에서 끌어와 원래 예산 수준의 금액을 지출한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신임 법관 임명식에서 신임 법관들에게 당부의 말을 하고 있다. 2019.10.11 hihong@yna.co.kr/2019-10-11 15:05:06/

감사원은 대법원에 대한 별도 재무감사를 한 결과를 4일 공개했다. 재무 감사는 지난해 10월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예산 전용 문제가 지적된 데 따른 것이다.

행정처는 2017년도 예산 편성 과정에서 대법원장공관 리모델링 예산 15억5200만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예산 심의 과정에서 비용 과다 등의 이유로 9억9900만원이 최종 편성됐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대법원장 공관은 대지면적 7100㎡에 연면적 1319㎡(지하 1층·지상 2층) 규모로 1980년 사용승인을 받았다.

행정처는 2017년 8월 조달청 나라장터에 ‘대법원장공관 디자인 및 환경개선사업’을 공고한 후 사업 예산으로 국회가 의결한 공사비보다 6억7000만원이 많은 16억7000만원을 재배정했다. 그리고는 차액을 충당하기 위해 다른 사업에 편성돼 있던 예산들을 무단으로 끌어왔다. ‘사실심(1·2심) 충실화’ 예산이었던 2억7875만원을 기재부 장관 승인 없이 전용하는 한편, ‘법원시설 확충·보수’ 예산 가운데 1억9635만원을 국회 의결 없이 이용했다. 모두 합쳐 4억7510만원을 무단 이·전용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기관장은 예산의 목적 외에 경비를 사용할 수 없게 돼 있다. 예외적인 경우에만 기재부 장관의 승인 또는 국회의 의결을 받아 예산을 이·전용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예외 경우에도 국회 의결 취지와 다르게 사업 예산을 집행해서는 안 된다.

행정처는 공관 리모델링 사업 내용은 외부 마감, 창호, 도로포장 등으로 '공사계약'에 해당하는데도 이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낙찰자를 선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물품·용역계약'에만 적용할 수 있는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하는 바람에 설계서 등을 기초로 한 예정가격을 작성하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사업 예산(16억7000만원)의 99.8%에 달하는 계약금액(16억6650만원)이 적절하게 산정된 것인지 확인할 수 없게 됐다.

감사원은 “행정처는 국회가 편성한 예산의 범위와 목적을 초과해 예산을 무단으로 이용 또는 전용했다”며 “공사계약에 적용할 수 없는 낙찰자 결정 방법을 잘못 적용했다”며 주의를 요구했다.

행정처와 각급 법원은 2017년 5월부터 지난 4월까지 해외연수를 위해 국외 파견 중인 법관 및 법원공무원 62명에게 지급하지 말아야 할 재판수당 및 재판업무수당을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당들은 모두 합쳐 2270여만원에 달한다. 감사원은 행정처장에게 잘못 지급한 수당을 회수하고 관련 지도·감독을 철저히 하라고 했다.

이와 함께 행정처와 각급 법원은 업무추진비로 집행해야 하는 간담회 등 식비 3억500여만원을 일반수용비로 잘못 집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주재관 재외근무수당 등 인건비 총 32억7000여만원도 관서운영경비로 잘못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가정법원 등 28개 법원은 업무추진비 총 5300여만원을 토·일요일 등 사용이 제한된 시간대에 증빙자료 없이 집행하는 등 예산집행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밖에 서울고등법원, 특허법원 등 21개 법원은 2016∼2018년 청사 보안 강화 등을 위해 엑스레이 검색기를 구매하면서 미자격 업체로부터 구매(17곳)했다고 한다. 또 예정가격을 잘못 결정해 동일 모델 제품을 실제 거래가격보다 높은 가격으로 구매(4곳)한 적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감사원은 행정처의 회계검사 운영을 내실화하라고 주문했다. 법원은 정원이 1만9899명, 예산 규모가 2조1000억원에 달하는 등 규모가 큰 조직이다. 그런데도 행정처 내 예산 집행 부서와 회계검사 부서가 분리돼 있지 않다. 회계검사의 독립성·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감사원의 입장이다.

행정처 측은 “감사원 감사결과를 반영해 관련 실무를 개선하고 향후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