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예산국은 ‘트럼프 충성파’… 청문회 출석 전면 거부

입력 2019-11-04 15:01

백악관 예산국이 우크라이나 스캔들 규명을 위한 청문회 출석 요구를 정면으로 무시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감싸기에 나섰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와 국무부 직원들이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청문회장에 나가 트럼프 대통령을 궁지에 몰아넣는 폭탄 발언을 쏟아놓은 것과 비교하면 온도차가 크다. 백악관 예산국은 믹 멀베이니 현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 측근들이 장악한 부서이기도 하다.

러셀 보우트 백악관 예산국장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 조사를 위한 하원의 청문회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워싱턴포스트(WP)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우트 대행은 멀베이니 대행이 예산국장에서 비서실장 대행으로 옮겨간 이후 후임자로 임명된 인사다. 역시 소환 대상에 오른 예산국 직원 2명도 출석을 거절할 것으로 전해졌다.

예산국은 NSC, 국무부와 함께 우크라이나 스캔들 의혹을 풀 실마리를 쥐고 있는 부서다. 민주당 의원들은 예산국이 대(對)우크라이나 군사 원조 지출을 돌연 중단한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라고 압박해왔다. 하지만 예산국 직원들은 의회의 출석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멀베이니 대행의 국가안보 분야 보좌관인 로버트 블레어도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다.

백악관 관리들에 따르면 보우트 대행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민주당 주도의 탄핵 조사에 협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보우트 대행은 대외원조 지출에 부정적인 트럼프 대통령의 뜻에 찬동하며 예산안에서 관련 항목을 삭제하는 방안도 모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때 예산국의 충성심을 의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예산국 직원들은 청문회에 결코 출석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트럼프 대통령은 안심시켰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전·현직 행정부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청문회에 출석해 불리한 증언을 하면서 궁지에 몰린 상태다. 커트 볼커 전 국무부 우크라이나 협상 특별대표와 마이클 매킨리 전 국무부 수석보좌관은 청문회 출석을 위해 사표를 제출했다. 특히 지난해 7월 트럼프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화통화를 직접 들은 당국자로서는 처음으로 알렉산더 빈드먼 육군 중령이 청문에 응하기도 했다. 그 뒤를 이어 팀 모리슨 NSC 러시아 담당국장도 지난달 30일 사표를 내고 이튿날 청문회에 나갔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부 관리들을 그의 ‘고용인들(employees)’이라고 지칭하며 이들의 청문회 출석에 격분했다고 익명의 소식통이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박 논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그들이 청문회에서 무슨 발언을 했는지 녹취록을 요구했다고 한다. 자기 변호사들이 이들의 청문회 출석을 막지 못한다고 불평을 터뜨리기도 했다. 청문회에서 자신을 공격하는 관리들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라며 공화당 의원들을 부추기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처음 폭로한 내부 고발자가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연루돼 있다며 “오바마 사람(Obama guy)”이라고 깎아내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