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 극단선택 추정 ‘성북구 네모녀’…책임기관은 까맣게 몰랐다

입력 2019-11-03 18:02 수정 2019-11-03 18:07
'성북구 네모녀 비극'이 발생한 다세대 주택.

‘생활고’ 탓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북구 네모녀의 실제 형편을 책임기관인 구청마저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구청이 복지 수혜자를 찾아 나서도록 한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찾동)’ 등 복지 사각지대 정책에 또다시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성북구청은 전날 숨진 채 발견된 정모(76·여)씨와 40대 딸 셋에 대한 복지 방문상담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3일 밝혔다. 복지 최전선인 구청마저도 정씨 가족의 생활고 여부를 알지 못했다는 뜻이다.

정씨는 찾동 대상에서부터 누락됐다. 나이가 너무 많아 기준에 안 맞는다는 이유에서다. 정씨는 찾동 제도가 시행된 2015년 이미 70세가 넘었는데, 찾동은 매년 딱 65·70세가 된 이들에 대해서만 방문상담을 추진한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인력이 부족해 어쩔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구청은 정씨 가족의 복지혜택이 기초연금 수령뿐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파악하는 데 그쳤다. 기초연금은 노인의 생활 보장을 위해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게 지급되는 돈이다.

정씨는 기초연금 수급자보다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아니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소득액이 중위소득의 30~50%에 못 미쳐 정부로부터 최저 생계비를 지원받는다.

이밖에 정씨가 실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렸는지, 어떤 생활을 하고, 질병이 있는지, 더 받을 수 있는 복지혜택이 있었는지 구청은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2014년 ‘송파 세모녀’ 사건 이후 복지 사각지대 해결은 구청의 책임이 됐다. 서울시는 ‘찾동’을 도입해 동주민센터 직원들이 매년 65세(성북구는 65세 및 70세)가 된 노인들을 찾아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도록 했다.

하지만 찾동은 지난 8월 ‘탈북 모자 사망사건’ 때도 구멍이 뚫렸다. 탈북자 한모(42·여)씨와 6살배기 아들이 관악구 봉천동 임대아파트에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 채 숨졌다. 형편이 어렵거나 어린아이를 둔 부모는 65세 노인과 함께 찾동의 대상자다. 관악구 해당 지역 동주민센터 공무원은 지난 4월 탈북모자의 집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어 현관문에 안내문만 붙이고 돌아왔다.

문제가 불거지자 서울시는 이같은 한계를 ‘주민 제보’로 보완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성북구 네모녀에겐 이 역시 무의미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네모녀와 관련한 아무 제보가 없었다”며 “찾동을 통해서 사실상 네모녀의 생활고를 파악하긴 어려웠다”고 말했다.

구청은 세금 체납자로서의 방문도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3년 동안의 자료 확인 결과 건강보험료 등 공과금 체납 사실이 없다는 것이다. 공과금이 3개월 이상 체납하면 구청 측이 체납자를 방문하게 돼 있다.

네모녀는 전날 성북구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리모델링 공사를 위해 방문한 업자가 숨진 지 한참 지난 네모녀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네모녀가 남긴 유서에는 생활고를 겪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집 우편함에서는 여러 신용정보회사에서 날라온 채무이행통지서와 이자지연내역서 등의 서류가 발견됐다.

오주환 기자 joh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