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어머니와 40대 딸 3명 등 네 모녀가 서울 성북구의 한 다세대 주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들 가족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었고, 공과금도 밀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이들이 남긴 유서에는 “그동안 힘들었다, 이제 하나님 곁으로 간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성북경찰서에 따르면 네 모녀가 숨진 채 발견된 건 지난 2일 오후 2시쯤이었다. 건물 리모델링을 위해 모녀가 세 들어 살던 집을 찾은 업체 직원이 문을 두드려도 반응이 없고, 문밖으로 심한 악취가 풍기자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이 문을 따고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 네 모녀는 한 방에 같이 숨져 있었고, 부패 정도가 매우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3일 “최소 몇 주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타살 혐의는 없는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집 안에서는 A4용지 2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는데 “하나님 곁으로 간다”는 취지의 내용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사인을 종교적 이유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유서와 주변 진술 통해 경제 상황이 어땠는지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르면 4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부검을 의뢰할 방침이다.
네 모녀가 살던 주택 바로 옆 건물에 사는 A씨는 “40대 딸을 한 번 본 적 있는데 인사를 해도 별다른 반응이 없고 쌀쌀한 느낌이었다”고 기억했다. A씨는 “당시엔 그냥 내향적인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을 더 붙여볼 걸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네 모녀가 살던 3층짜리 빌라는 5~6년 전 전체 리모델링을 했고, 주로 성북동 토박이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이 곳에서 30년을 살았다는 B씨는 “네 모녀는 3년전쯤 외지에서 이사온 것으로 기억한다”며 “그렇다보니 이웃들과 별다른 왕래가 없었고 잘 모르고 지냈다”고 말했다. 소독업체는 이날 네 모녀가 살던 집을 제외한 나머지 세대에 대한 소독을 마쳤다.
구청과 인근 부동산에 따르면 모녀는 이 집에 2년 넘게 월세로 살고 있었고, 어머니는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 건강보험료 등 공과금 체납 사실이 없고, 가족 중 장애가 있는 사람도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집 우편함에 여러 신용정보회사에서 날라온 채무이행통지서와 이자지연내역서 등의 서류가 있는 것으로 보아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주민들 사이에선 “그 집 딸이 외제차를 탔다”는 말이 나왔지만 경찰은 “등록 서류상으로는 네 명 모두 소유 차량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