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뚫려” 호언장담했던 ‘트럼프장벽’…11만원 가정용 톱에 구멍

입력 2019-11-03 15:39 수정 2019-11-03 15:51
미국 남부, 멕시코 사이의 국경 장벽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사실상 뚫릴 수 없다”고 호언장담했던 ‘트럼프 장벽’이 100달러(약 11만6700원)짜리 가정용 전동톱에 구멍이 뚫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남미 불법 이민을 막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여 미국 남부와 멕시코 국경 지대에 세운 거대 장벽이 실효성 자체에 의문이 제기되며 흔들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일(현지시간) “멕시코 밀수 범죄조직들이 최근 몇 달간 가정용 무선 전동톱을 사용해 트럼프 장벽에 사람과 마약이 드나들기에 충분한 크기의 구멍을 냈다”고 보도했다. 이 톱은 철물점에서 단돈 100달러에 구매할 수 있는 제품으로, 익명을 요구한 미 국경순찰대원은 “특수 날로 갈아끼울 경우 강철과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장벽의 말뚝을 단 몇분안에 손쉽게 잘라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장벽은 5~9m 높이의 말뚝을 촘촘히 세운 뒤 말뚝들의 맨 꼭대기 부분을 가로로 긴 철제 판이 연결하고 있는 형태다. 개별 말뚝의 밑단을 톱 등을 사용해 잘라낼 경우 말뚝이 철제 판에 매달린 채 달랑거리게 되는 구조다. 이를 손으로 밀면 성인 한 명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

범죄조직들은 이뿐만 아니라 대표적 마약 밀매 지역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고 지역에서는 장벽 넘기용 사다리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전현직 국경순찰대원들에 따르면 멕시코 범죄조직들은 국경지대에서 마약 등의 밀매업으로 수십억 달러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장벽 등 새로운 출입국 통제 강화책을 무력화시켜야 할 유인이 이미 충분하다는 것이다. 로널드 비티엘로 전 국경순찰대장은 “범죄 카르텔들은 단순히 국경 장벽이 진화된다고 해서 산디에고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들 역시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경의 삶”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장벽을 뚫는 새로운 파해법이 등장하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장벽의 우수성을 자랑하며 이를 자신의 업적으로 과시했다. 그는 장벽을 슈퍼카 롤스로이스에 빗대 “불법 이민자들이 넘어갈 수도, 아래로 지나갈 수도, 통화할 수도 없는 명품”이라고 말했다.

중남미 불법 이민을 막기 위한 819㎞ 길이의 국경 장벽 건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후 각종 연설, 트위터, 광고 등을 통해 장벽 건설을 적극 홍보해왔다. 현재까지 122㎞의 새 장벽이 설치를 마쳤다. 트럼프 행정부는 장벽 건설 비용으로만 총 100억 달러(약 11조6700억원)을 투입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비용을 멕시코가 부담하도록 하겠다고 주장해왔으나 사실 장벽 사업에 투입된 자금의 출처는 미국 국민들이 낸 세금이었다. 주로 국방부 예산이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