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양성인데 ‘무죄’ 선고한 이유… 대법 “영장 혐의와 무관”

입력 2019-11-03 11:37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통해 확보한 소변에서 마약 양성반응이 나왔어도 영장에 기록된 혐의사실과 관련이 없다면 무죄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류위반(향정) 혐의로 기소된 김모(42)씨의 상고심에서 필로폰 투약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김씨는 지난해 5월 부산의 한 모텔에서 타인에게 필로폰을 무상으로 받은 혐의와 같은해 6월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1심은 마약 양성 반응을 토대로 두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는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된 시점을 문제삼았다. 영장이 발부된 날짜는 5월 29일인데 집행된 날짜는 6월 25일이었기 때문이다.

당초 수사기관이 발부받은 압수수색 영장에는 5월에 저지른 필로폰 수수 혐의와 관련한 내용만 기재돼 있었다. 수사기관은 한 달 정도 지난 6월에서야 김씨의 소변을 확보했고, 여기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2심 재판부는 “소변에서 마약이 검출될 수 있는 기간은 투약 후 4~10일”이라며 “검찰은 별도의 영장으로 압수한 모발에서 필로폰이 검출되지 않자 소변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을 근거로 ‘6월 투약’ 사실을 기소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압수영장에 기재된 혐의사실의 내용과 수사 대상, 수사 경위 등을 종합해 보면 필로폰 투약은 수사기관에서 이 사건 영장을 발부받을 당시에는 전혀 예견할 수 없었던 혐의사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필로폰 투약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했다.

2심 재판부는 “영장주의 원칙상 적어도 영장 발부 전에는 해당 혐의사실이 존재해야 하는데, 필로폰 투약은 영장 기재·발부 시점보다 한 달 뒤에나 발생한 범죄”라며 “이 경우 수사기관은 사후영장 등을 받을 수 있었지만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대법원도 “김씨의 소변과 소변에 대한 마약류 검사 결과를 기재한 마약감정서는 압수영장 기재 혐의사실과 무관한 별개의 증거를 압수해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라며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