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사태 뒤에도 계속된 태극기 집회…광화문 가득 ‘태극기 가판’ 편 상인들

입력 2019-11-03 04:00
보수단체들이 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정권 반대 집회를 벌이는 가운데 한 상인이 노점에 가판을 펴놓고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기 등을 함께 팔고 있다.

“비슷한 생각이니까 나와서 이렇게 팔지. 돈 때문에만 나온 건 아니에요.” 어김없이 ‘주말 태극기 집회’가 대규모로 벌어진 2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만난 노점상 A씨(56)씨는 가판대 앞에 서서 말했다. 그의 가판대에는 태극기와 성조기가 함께 수십 수백장씩 포개져 놓여있었다. 접이식 철재막대에 매달린 대형 깃발부터 손가락 굵기의 PVC 파이프에 달린 소형 깃발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장관직 지명으로 시위가 커지기 시작한 지난 8월 중순부터 광장에 나왔다. 처음에 비하면 지금은 매출이 반토막 났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안 그럴 텐데 노인들은 이거(깃발) 사면 안 버리고 또 가지고 나오거든. 새로 사는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하루 매출이) 지금은 대충 12~13만원쯤?” 그의 목소리는 집회 무대 스피커에서 격렬하게 터져 나오는 ‘문재인 탄핵’ 등 구호와 군가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았다.

이날도 서울 종로구 광화문거리는 오전부터 태극기를 든 행렬로 가득 찼다. 광화문광장의 북쪽 끝부터 남쪽, 오후 들어서는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서까지 행렬이 이어졌다. 조 전 장관 지명으로 지난 8월 시위가 촉발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조 전 장관의 사임 뒤에도 이 같은 대규모 태극기 집회는 계속되고 있다. A씨 같은 ‘태극기 상인’들도 주말마다 시위대를 따라 이곳으로 출근한다.

이날 만난 상인 대부분은 시위대와 같은 생각이었다. 이들 중에는 태극기 집회에 나오다 그대로 장사를 시작한 예가 유독 많았다. A씨와 채 20m도 안되는 거리에서 가판을 펼친 50대 후반 상인 B씨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부터 광화문에 나왔지만 지금은 생각이 반대로 바뀌었다”면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크게 잘못하고 있는 거 아니냐”고 되물었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표정은 격앙돼 있었다.

그 역시 본격적으로 ‘태극기 장사’를 시작한 건 A씨와 비슷한 시기라고 했다. 깃발 가격을 물어보자 “노인들이 돈 없어 보이면 (태극기를) 공짜로 주기도 한다. 돈 벌려고 나온 게 아니다”면서 가격을 알려주지 않으려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잠시 다른 곳을 본 사이 그는 잇달아 들른 손님들에게 “작은 건 2000원, 큰 건 1만5000원”이라며 흥정을 하고 있었다. 손님의 대부분은 백발이 성성하거나 주름이 많은 노인이었다.

광화문역 7번 출구의 우리공화당 천막 옆 트럭에서는 1000원 짜리 호떡을 종이컵에 담아 팔고 있었다. 또 다른 상인 C씨의 트럭이다. 트럭 전면에 시위대가 그려진 그림과 함께 ‘만세 호떡’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호떡 맛이 좋아 불티나게 팔린다”고 자랑하듯 말한 C씨는 “오늘 30~40만원 어치 정도는 판 것 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그 역시 시위대와 생각이 같았다.

‘태극기 상인’들 입장에서 이번 같은 ‘태극기 대목’은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 들어 추워지는 날씨와 함께 시위 규모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 전 장관 일가를 향한 검찰 수사가 어떻게 되느냐도 상인들에게는 변수다. 태극기와 함께 생수와 커피 등을 시위대에 팔아온 문모(57)씨는 “앞으로 날이 추워지면 팔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것”이라면서 “따뜻한 커피 정도나 팔아볼까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