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 용퇴하는 최장수 한샘 CEO 최양하

입력 2019-11-01 18:05 수정 2019-11-02 08:01
최양하 한샘 회장이 1일 상암동 사옥에서 퇴임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샘 제공

한샘을 떠나는 최양하(70) 회장은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사옥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회사는 어려움이 있을 때보다 상황이 좋을 때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외환(IMF) 위기를 기회로 성장했지만, 성장을 통해 자금력이 풍부해지니 임직원들이 점점 긴장감을 놓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1994년 한샘 대표가 된 최 회장은 지난달 31일 25년 만에 퇴임을 발표했다. 최 회장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 “지난 40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걸 보며 우리 한샘 가족은 새로운 한샘의 미래를 계획해야 하고 저는 제 미래를 계획해야 한다”며 “한샘의 50주년을 바탕으로 새로운 미래 50주년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새로운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그는 “한샘은 남들이 안 하거나 못 하는 일을 해왔기 때문에 남들보다 훨씬 힘들었던 것을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선두 기업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이자 보람이었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퇴임사의 많은 부분을 회사와 직원들 걱정으로 채웠다. 그는 마지막 회의에 참석했을 때도 직원들을 질책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최 회장은 국내 가구업계에서 한샘의 매출을 2조로 끌어올린 대표적인 전문 경영인이다. 1973년 설립된 한샘에서 40년을 근무해 25년간 CEO 재직한 기록은 국내 500대 기업 중 유일하다. 최 회장이 CEO로 재직하는 동안 한샘의 매출과 시가 총액이 각각 15배, 50배 늘었다.

그는 대우중공업을 거쳐 79년 한샘에 입사했다. 30세 최양하 대우중공업 대리는 사표를 던지고 연매출 1000억원에 불과한 싱크대 제조기업 한샘의 생산과장으로 입사하기로 했다. 당시 주변에서 그의 선택을 많이 말렸다고 전해진다. 그는 중소기업을 국내 대기업으로 키우는 꿈을 꿨다.

한샘에 그가 입사할 때만 해도 국내 가구는 부뚜막에서 밥을 짓는 형태였다. 이후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개발이 붐을 이루며 현대식 부엌이 보급되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입사한 지 15년 만인 45세에 한샘에서 대표이사에 올랐다. 조창걸 창업주가 그를 눈여겨보다 파격 발탁한 것이다. 그는 ‘가구가 아니라 공간을 판다’는 한샘의 경영 방향을 제시하면서 이케아 진출에 대비했다.
최양하 한샘 회장이 1일 상암동 한샘사옥에서 직원들이 선물한 공로패와 꽃다발을 받아 들었다. 한샘 제공

이후 25년 간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4년 ’가구 공룡’ 이케아 상륙, 사내 성추문 사건, 중국 시장 진출 부진 등 크고 작은 굴곡을 거쳤지만 위기 순간마다 과감한 사업 확장 전략으로 맞대응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지난해 사내 성폭행 및 은폐 사건이 불거져 큰 부침을 겪었다.

최 회장의 역할을 이어받아 전문경영인인 강승수 부회장이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대표이사직에 오른다. 재무를 책임졌던 이영식 사장이 연말에 부회장으로 승진할 예정이다. 한샘은 조 명예회장이 1994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후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직원 월례조회를 겸해 열린 이임식은 소박하게 진행됐다. 한샘 직원은 최 회장에게 공로패와 꽃다발을 증정했다. 일부 직원들은 혼성그룹 아바의 곡 ‘I have a dream’을 불러 그를 환송했다. 평소 그가 즐겨 부르던 팝송이었다. 이임식에 앞서 최 회장의 업적 등이 담긴 영상이 상영됐다. 최 회장은 영상이 끝날 무렵 눈시울을 붉혔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