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 피의자 이춘재(56)가 자백한 초등생 살인사건의 유골 수색이 1일 시작됐다.
30년 전 초등생 딸을 잃은 70대 후반의 백발 노인은 이날 오전 경기도 화성 A공원 입구에서 “무슨 말을 하느냐”며 “자식 잃은 죄인인데 무슨 말을 하냐”고 말했다. 그는 1989년 7월7일 화성 태안읍에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실종된 김모(당시 8세)양의 아버지다.
김양은 실종 5개월여 만인 같은 해 12월 마을 주민들에 의해 실종 당시 착용한 옷가지 등만 발견돼 단순 실종사건으로 분류됐었다. 하지만 이춘재가 자신이 김양을 살해했음을 자백하자 유족들은 30년 만에 확인된 딸의 죽음에 원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김양의 부모 등 유가족들은 발굴 작업에 앞서 수색 지역 앞에서 헌화하고 오열하며 김양의 명복을 빌었다.
김양의 고모는 “30년을 폐인처럼 살아왔다. 아무리 암울한 시대일지언정 살인을 단순 가출로 취급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당시 수사를 맡았던 그분들 정말 얼굴 한번 보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제대로 진실이 밝혀져 다시는 아이들이 이런 험악한 꼴을 당하지 않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이날 오전부터 A공원 일대 3600여㎡를 대상으로 김양의 유골을 찾기 위한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A공원 일대는 김양이 실종 당시 입고 있던 치마와 메고 있던 책가방 등 유류품들이 발견된 야산이 있던 곳이다.
이곳은 이춘재가 유류품과 함께 김양의 시신을 유기했다고 진술한 곳과는 100여m가량 거리가 있지만, 그가 지목한 곳은 현재 아파트가 들어서 있어 발굴 작업이 불가능하다. 경찰은 30년의 세월이 흐른 데다 이춘재가 진술한 유기 장소와는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유골 발굴이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유족들의 마음을 살피겠다”며 수색을 결정했다.
발굴 작업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민간업체 관계자 등 120여 명이 동원됐고, 지표투과 레이더(GPR) 3대와 금속탐지기 등이 투입됐다. 지표투과 레이더는 초광대역(UWB) 전자기파를 발사해 최대 3m 아래의 내부 구조물을 탐지하는 비파괴 탐사 기구다.
작업은 전체 구역을 5㎡씩 나눠 세분화한 뒤 페인트를 칠하듯 지표투과 레이더와 금속탐지기로 한 줄씩 특이사항을 체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날 투과 작업을 마치면 2일부터 특이사항이 발견된 곳을 10㎝씩 아래로 파내 지질을 분석하는 작업이 이어질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정된 모든 구역을 수색할 수 있도록 각 구획에 번호를 매겨 빠지는 부분 없이 수색을 진행하고 있다”며 “특이 지형이 몇 개가 나오든 모든 지점을 수색할 계획이기 때문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이춘재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화성 사건을 포함한 14건의 살인을 자백하며 김양 역시 자신이 살해했다고 자백했다. 10건의 화성사건 외에 경찰이 밝힌 이 씨의 살인사건은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 1989년 7월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1991년 1월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으로 총 4건이 더 있다.
박세원 기자 o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