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갑질 맞서 싸우면 이긴다”… 극복 사례 1위 ‘태움’ 고발

입력 2019-11-01 05:00

한 대학교 계약직 여성 A씨는 정규직 남성 선임에게 수차례 성폭력을 당했다. 선임은 유부남이었다. 그는 성적인 발언을 노골적으로 뱉었다. A시는 “너와 섹스하고 싶어 꿈까지 꿨다” “너를 생각하면 콘돔을 챙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육체적으로 너 좋아하면 안 되냐” 같은 말을 수시로 들었다. 불쾌함과 거부 의사를 거듭 표현했지만 소용없었다. 출장 자리에서 선임은 A씨의 손을 강제로 잡아채며 키스를 시도한 적도 있다. A씨는 다른 갑질을 당한 동료 4명과 함께 국민신문고 사이트에 신고했다. 선임은 10년간 일한 대학교에서 해임됐다. 국내 동종업계로는 취업이 어려워져 현재는 가족과 외국으로 이민갔다. -최우수상 수상작 ‘타인은 지옥이었던 직장, 갑질 신고 후 가해자 처벌 성공 사례’ 각색-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출범 2주년을 맞아 ‘직장갑질 뿌수기 공모전’을 열고 수상작 33편을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지난 3일부터 23일까지 진행된 공모전에는 직장 갑질을 이겨낸 사례를 비롯해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시행 후 변화된 사무실의 모습 등을 담은 수기 39편이 모였다.

대상작으로는 일명 ‘태움’으로 불리는 의료계 직장 내 괴롭힘을 고발한 종합병원 13년차 간호사 A씨(참가명 ‘베리베리1’) 후기가 선정됐다. ‘직장 내 괴롭힘, 침묵을 깨다’라는 제목의 수상작은 비하·모욕 등 수간호사의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해 정신과 치료에 들어간 동료들을 대신해 사내 고충처리부서에 이 문제를 신고한 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기록했다. 그는 피해사실을 사내 게시판 및 고충처리부서, 청와대 국민청원, 언론 등에 지속적으로 알렸다. 이후 이 병원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 시스템이 구축됐다.

심사위원들은 “부당함에 맞서 끝까지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확실한 메시지”라며 “갑질에 시달리면서도 혼자 숨죽이고 있을 많은 피해자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준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또 “사용자나 상급자의 터무니없는 괴롭힘은 읽는 이의 마음을 끊임없이 불편하게 했으나 노동자들의 굽힘 없는 당찬 저항은 직장이란 곳이 개인과 가족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금전을 버는 단순한 공간에서 그치지 않고 한 인간이 자아를 실현하고 보람을 찾는 삶의 터전임을 깨닫게 했다”며 “노동자들이 직업의 현장에서 겪는 온갖 갑질과 이에 맞서 스스로의 권리를 회복하고 자존을 지키기 위해 싸운 경험을 절절하게 써내려간 동시에 비슷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용기를 주는 작품들이 많아 그 중 수상작을 콕 집어 선정하는 작업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고 말했다.

대상 수상자는 “내가 했던 일은 상(賞)을 받으려고 한 일이 아니라 상(喪)을 당하지 않으려고 한 일”이라며 “더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장이나 목숨을 잃는 간호사가 없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최우수상에는 ▲타인은 지옥이었던 직장, 갑질 신고 후 가해자 처벌 성공 사례 ▲걷기 힘든 길 직장갑질119와 함께가 선정됐다. 우수상으로는 ▲그놈에 갑(甲)질 좀 하려다 갑~ 갑~ 해진 회사 을(乙)매나 통쾌한지! ▲신도리코 분회 ▲정지수, H사가 뽑혔다.

응모된 작품들은 사업자와 응모자가 드러나지 않도록 각색해 직장 내 괴롭힘 방지를 위한 홍보 활동에 활용될 예정이다. 직장갑질119는 대상 1명에게 100만원, 최우수상 2명에게 각 50만원, 우수상 3명에게 각 20만원을 시상한다. 시상식은 11월 1일 오후 6시 서울 동교동 카페 본주르에서 열린다.

직장갑질119는 2017년 11월 1일 출범한 단체다. 그동안 이 단체는 ‘한림성심병원 갑질보고서’ ‘2018 대한민국 직장갑질 보고서’ 등을 발표했다. 일명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 제정에 큰 역할을 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