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모친상을 당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명의의 조의문을 전달한지 하루만에 미상 발사체를 발사했다. 남측 대통령에 대한 예우를 갖추되, 경색된 남북 관계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31일 “김 위원장이 전날 오후 늦게 문 대통령 앞으로 조의문을 전달해왔다”며 “김 위원장은 조의문에서 고(故) 강한옥 여사 별세에 대해 깊은 추모와 애도의 뜻을 나타내고 문 대통령께 위로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조의문은 김 위원장의 친필로 작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의문은 윤건영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전날 판문점을 방문해 북측 실무자로부터 직접 수령했다. 윤 실장은 판문점을 떠나 곧바로 강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부산 남천성당으로 이동해 문 대통령에게 조의문을 전달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윤 실장에게 조의문을 건넨 북측 인사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아니다”라며 “누구인지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김 위원장이 남측 인사에 대해 조의를 표한 것은 지난 6월 19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 별세 이후 4개월만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김 부부장을 판문점으로 파견해 조의문과 조화를 전했다. 남북 정상이 공식 소통한 것은 지난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이후 처음이다.
북한이 강 여사 별세에 대한 애도의 뜻을 전해오면서 청와대 내부에선 안도의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고 대변인이 관련 소식을 전한지 3시간30여분만에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상 발사체 2발을 쏘면서 청와대는 다시 바쁘게 움직였다. 발사 당시 청와대에선 목요일마다 정례적으로 열리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가 진행 중이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상임위원들은 회의 도중 북한의 발사 소식을 접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만 했다.
앞서 북한은 금강산 관광 문제 논의를 위한 남측의 실무회담 제안을 거부하는 등 대화를 원치 않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번 발사는 조의문 전달과 별개로 남측과 대화할 생각이 없는 북한의 속내가 담겼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조의문을 보내면서 남북 화해 분위기 조성에 대한 기대감도 일었지만,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발사체 발사가 재개되면서 또다시 남북 관계가 얼어붙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