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상전자담배’ 판매금지 관건은 유해성 입증이지만…쉽지 않을 듯

입력 2019-10-31 16:41

정부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중단 권고에 전자담배 업계와 흡연자들이 “유해성을 입증하라”며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성분을 근거로 시장에서 퇴출시킨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유해성 입증이 쉽지 않아 현재로선 판매금지까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전자담배산업협회는 3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을 하고 액상형 전자담배의 사용 중단을 강력 권고한 정부의 ‘선제대응’을 비판했다. 협회는 “유해물질이 더 많은 일반담배는 놔두고 액상형만 사용중단을 권고한 건 어불성설”이라며 “액상형 담배로 인한 폐 손상 의심환자의 증거도 빈약하다”고 주장했다.

질병관리본부는 9월 20일부터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으로 인한 폐 손상 의심사례를 접수받았다. 지난 2일 신고된 30세 남성은 일반담배를 피우다가 액상형으로 바꾼 지 2~3개월만에 기침, 호흡곤란, 가슴통증 등이 생겼다. 보건복지부는 “전문가 검토 결과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과 관련한 폐 손상 의심사례에 부합한다”면서도 “액상형 담배 사용과의 관련성은 추가 사례를 수집해 역학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흡연자들은 “정부 발표를 신뢰할 수 없다”며 해외 자료를 공유하고 있다. 영국 보건부는 웹사이트에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약 95% 덜 해롭다’는 글을 게재했다. 청와대 청원게시판에서는 ‘대한민국은 어째서 전자담배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아닌 거짓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인가요’라는 글에 2만명 넘게 동참했다.

정부는 액상형 전자담배의 유해성이 입증되면 판매금지까지 추진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유해성이 입증돼야 판매를 막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국내 액상형 전자담배에 대마유래성분(THC)과 비타민 E 아세테이트가 들어있는지를 검사 중이다. 미국에서 폐 손상을 유발했다고 의심되는 물질이다.

그러나 THC 함유제품 출시는 마약 반입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공식경로를 통해 들어온 제품에서 이 성분이 검출될 가능성은 극히 낮다. 비타민 E 아세테이트도 THC 기화를 위한 물질인 탓에 불검출 가능성이 크다.


검출돼도 폐 손상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에서 중증 폐 손상 환자의 78%가 THC, 비타민 E 아세테이트가 함유된 액상형 담배를 피운 것으로 집계됐지만 아직 이 물질과 폐 손상 간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2014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KT&G와 필립모리스, BAT코리아에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이 5년째 1심에 머문 것도 유해성을 입증하지 못해서다. 이들 회사는 “포름알데히드나 아세트알데히드와 같은 유해물질은 농산물에도 있다”며 “담배와 질환 간 명확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건보공단 관계자는 “흡연자가 정확히 무슨 담배를 피웠는지 증명하라고도 한다”며 “유해성 입증이 쉽지 않다”고 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액상형 전자담배가 일반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게 불분명하기 때문에 액상형도 일반담배와 동일하게 취급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선 기자 ys8584@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