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분의 아이들세상] 훈육을 못하는 부모

입력 2019-10-31 08:16

초등학교 1학년 남자 아이 K는 산만하고 말을 듣지 않는다. 집에서도 밥먹는 일, 잠자는 일, 양치질하기, 샤워하기 등등 어느 하나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아 엄마는 육아에 지치고 힘이 든다.

진료실을 찾아온 엄마는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많은 지 아이가 듣고 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아이의 만행(?)들을 쏟아 냈다. 와중에도 K는 책상 위의 물건을 허락 없이 함부로 만지거나 모래 놀이 상자의 모래를 흩뿌리거나 이리 저리 쿵쾅거리고 뛰어다녔다. 엄마가 말하는 중에도 계속 끼여 들고 칭얼대며 엄마 곁을 왔다 갔다 맴돌았다. 그런데도 엄마는 아이에게 잔소리만 할 뿐 행동을 통제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빠는 끌려온 사람처럼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상황을 지켜 볼 뿐이었다.

부모들과 따로 이야기 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통제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아이를 잠시 진료실 밖으로 내보라고 이야기 하였다. 엄마는 “K야 말 잘 듣는 아이니까 잠시 밖에 나가 있으렴” 아이는 들은 척만 하며 제가 하고 싶은 것만 하였다. “제발 부탁이야. 좀 나가 있으면 안 될까?” 역시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길 수차례, 드디어 옆에 있던 아빠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야 xx야 빨리 나가지 못해” 하고 화를 내었다. 엄마는 아빠를 나무라며 “그렇게 아이한테 화를 내면 어떻게 해“ 라고 하였다. 아빠 말에 잠시 기가 죽었던 K는 엄마에게 쪼르르 달려가 안기었다. 집에서도 이런 모습이 매일 반복되고 있는 듯 했다.

엄마는 아빠가 이렇게 느닷없이 화를 내는 모습이 비일비재하다며 아빠를 변화시켜 달라고 하였다. 아빠는 화를 낸 것을 사과하며 “선생님 앞에서 창피해서 견딜 수가 없어 참다 참다 화를 내었다”며, “아내가 아이를 과잉보호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서로 자기편이 되어 상대를 변화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거다. 하지만 가족 문제는 다른 사람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한다면 결코 해결할 수 없다. 대개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순환적으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언제 부터인가 부모들은 K의 엄마처럼 아이를 훈육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 엄격함이 필요한 순간에도 아이에게 사정을 하고 부모로서의 주도권을 포기한다. 아이가 상처 받을 까봐 그렇다고 한다. 부모 자신의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상처 받은 기억이 많은 경우에 특히 그렇다. K의 엄마도 그런 경우이다. 사랑, 관심 받지 못했고 비난만 받았던 기억 때문에 아이에게는 그런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남편에게 사랑 받고 싶어 결혼했지만 남편은 일에만 빠져서 있어 다시 상처 받게 되고,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들에게 집착하게 된 거다. 아빠는 평소 무관심하다가 엄마에게 반항하고 소란스러운 아들에게 화만 내게 되니 아들도 아빠는 멀리하고 엄마 곁에서만 맴돌고 나이에 맞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먼저 부부간의 가족 규칙과 훈육의 방침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부부가 연합 전선을 펴지 않으면 ‘말 안 듣는 아이’를 결코 이길 수 없는 걸 인식해야 한다. 엄마는 아빠가 아이에게 화내기 전에 훈육에 자신감을 갖고 단호하게 해야 한다. 엄마는 허용하다가, 아빠가 화를 내어 아이를 복종하게 하는 상황이 반복되면 아이와 아빠의 관계는 단절될 수 밖 에 없다. 아빠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아내도 아들에 집착을 놓을 수 있고 균형 잡힌 육아를 할 수 있다. 아빠는 아이와 친밀감을 먼저 쌓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서로간의 정서적인 유대감은 효과적인 훈육에도 필수적이다.

이호분 (연세누리 정신과 원장,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